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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지계획령(1934-1962)의 성립과 전개에 관한 법제사 연구

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조선시가지계획령의 성립과 전개를 법제사적으로 분석했다.
초록
1934년까지 식민지조선에는 국가 차원에서 제정된 도시계획법은 존재하지 않았고, 각종 시설에 관한 개별적 토목사업법규와 건축 및 영업규제에 관한 지역별 ‘경찰규칙’ 등이 다양한 명칭과 내용으로 제정되어 운용되었다. ‘조선시가지계획령’은 1934년 제정된, 한반도 최초의 도시계획법이었다. ‘조선시가지계획령’은, 일본의 도시계획법(1919, 이른바 ‘구법(舊法)’)과 그 자매법인 시가지건축물법(1919, 이른바 ‘물법(物法)’)이 통합된 형태로 탄생했고, 따라서 이 구법(舊法)과 물법(物法)의 특징과 한계를 이어받은 것이었다. 또한 일본의 구법(舊法)과 물법(物法)의 개정은, ‘조선시가지계획령’에도 그에 상응하는 변화를 초래했다. 이러한 ‘조선시가지계획령’은 1948년 대한민국정부 수립과 더불어 ‘시가지계획령’으로서 존속되었고, 1962년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의 제정에 의해 폐지되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식민지조선이라는 환경적 특수성 속에서 일본의 ‘구법(旧法)체제’의 변형으로서 탄생했던 ‘조선시가지계획령’의 내용을 분석하고 특징을 도출하여, 한국 도시계획법제사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의미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조선시가지계획령’은 일본의 도시계획법(1919)과 시가지건축물법(1919)이 통합된 형태였고, 그로 인해 도시계획법적 요소뿐만이 아니라 건축법상의 개체규정도 포함하고 있었다.
본 연구는 도시계획 법제사의 일환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연구의 범위를 한정하기 위해서 ‘시가지계획령’의 내용 중에서 ‘건축법상의 개체규정’에 상응하는 것은 연구대상에서 제외한다. 본 연구의 진행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을 도출했다. 첫째, 일본의 도시계획법(旧法)체제가 지니고 있던 일본 도시계획의 특성이 식민지조선에 유입되었다. 둘째, 구미(歐美)에서 자치체 사무로서의 도시계획이 일본에서 국가사무로 정착되었고, 이는 다시 식민지 조선에 들어왔다. 구법(旧法)체제가 가졌던 국가사무로서의 도시계획이 식민지조선에 그대로 유입되었다. 셋째, 일본이 본토에서 실행하기 어려웠던 도시계획적 실험을 식민지조선에서 행하는데 ‘시가지계획령’을 활용했다. 또한 본 연구는 ‘시가지계획령’이 1962년 도시계획법이 제정된 이후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었다. 첫째, 현행 도시계획법제도의 기본적 특성이 ‘조선시가지계획령’에서 시작되었다. ‘시가지계획령’에서 중시했던 ‘시가지의 창설’이 현행법의 도시관리계획에서 ‘시 또는 군의 개발’로 규정되어 있어, 한국 도시계획법제도에서 ‘개발’의 중요성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도시계획을 구성하는 요소가 ‘시가지계획령’ 이후로 여전히 ‘지역·지구·구역의 계획’, ‘시설의 계획’, ‘사업의 계획’의 세 가지로 구성된다.
이 기본적 틀은 한국의 도시계획이 ‘시설계획’이고, ‘사업계획’임을 보여준다. 둘째, 현행 법제도가 가진 원류의 상당 부분을 ‘시가지계획령’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의 용도지역·지구제나 환지제도는 ‘시가지계획령’에서 그 내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외에도 개발행위허가에 관련된 내용, 토지 등의 수용 및 사용에 관한 규정, 비용 부담의 원칙 등은 ‘시가지계획령’부터 유지되던 내용이 조금 추가되거나 일부 변형된 형태였다. 본 연구는 법령의 내용에만 중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했다. 그래서 실제 도시계획행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실제 도시계획을 이해하려면 도시계획행정의 진행과정 및 거기서 생산된 공문서를 분석하는 것도 중요한 연구일 것이다. 또한 법조문의 단순 비교를 통해서 ‘시가지계획령’부터 이후 제정된 도시계획법과의 관계를 정리만 했고, 될 수 있으면 의미부여를 피했다. 이는 연구자의 역량부족이 그 이유라고 설명하고 싶다. 본 연구를 통해서 ‘시가지계획령’과 현행법제도와의 관계가 설명되고, 여기서 파악된 그 고유한 특성을 통해 현행 도시계획법제도의 이해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발행 정보

2011. 전남대학교 대학원 국내석사 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