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명동대성당 부지를 둘러싼 조선 정부와 천주교회의 소유권 분쟁을 외교사적으로 재검토했다.
초록
본 연구는 명동대성당 건립 과정에서 조선 정부와 조선 천주교회 사이에서 발생한 부지 분쟁을 조선 후기 외교 질서의 변화와 공간 질서의 변화 속에서 재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기존 연구들은 해당 분쟁을 종교적 갈등이나 토지 소유권 문제로 바라보았으나, 본 논문은 그에 더 나아가 개항 이후 조선이 직면한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발생한 외교적 사건이었다는 점에 주목해 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하여 우선 명동대성당이 위치한 명례방(明禮坊)의 정체성과 초기 천주교 공동체가 명례방에 역사적 접점을 형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았다. 18세기 후반 이벽(李蘗)과 이승훈(李承薰)을 중심으로 조직된 최초의 천주교 신앙공동체는 명례방의 김범우(金範禹)의 집으로 모임의 장소를 옮기게 되면서 명례방과의 역사적 연고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1886년 조선과 프랑스 사이에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이후에는 명례방 종현(鍾峴) 지역에 주교좌 성당의 건립 계획과 함께 인쇄소, 고아원, 수녀원 등을 건립하며, 공간적 거점화를 본격화하였다. 다음으로 본 논문은 명동대성당 부지 분쟁의 전개 과정을 조선 정부와 프랑스 측의 외교 교섭 속에서 분석하였다. 조약 체결 이후 본격적으로 성당 건축을 위한 작업을 준비하던 프랑스 선교회 측은 조선 정부에 의해 해당 지역의 토지 소유권을 억류당한다.
해당 분쟁은 단순 행정적 규제를 넘어 외아문 독판과 프랑스 공사가 참여하는 외교적 공방의 형태로 진행된다. 이때, 조선이 보여준 ‘형식적 반대와 실질적 묵인’의 태도는 전통적인 공간 질서 수호라는 명분과 서양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의 안정적 유지라는 과제에 당면한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에 따라 해당 분쟁의 본질이 일방적인 탄압의 논리가 아니라 전통적 공간 인식과 근대 국제법적 논리가 충돌하고 조정되는 과정이었음을 확인하였다. 결과적으로 명동대성당 부지 분쟁은 단순한 종교 시설 건립 문제나, 토지 소유권의 문제를 넘어, 조선과 서구 열강이 서로 다른 공간에 대한 개념을 교섭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이를 통해 명동대성당 건립 과정에서 발생한 부지 분쟁을 외교사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하고, 개항기 조선이 천주교 세력과 서구 열강 국가인 프랑스와의 사이에서 국내 공간에 대한 통제권을 지키고자 한 과정이었음을 조망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발행 정보
2026. 學位論文(碩士) -- 韓國學中央硏究院 韓國學大學院 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