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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 여의도 및 잠실지구 개발계획에서 건축가와 도시계획가의 참여와 역할

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1960~70년대 여의도·잠실지구 개발계획과 계획가들의 참여를 분석했다.
초록
1960년대 이후 서울은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었다. 특히 고도성장기 또는 압축성장기로 불리는 1960-70년대는 서울을 비롯한 많은 지역에서 도시개발사업이 행해진 시기였다. 그러나 본 연구대상인 여의도와 잠실지구 이전까지는 도시개발사업에 대한 도시계획 체계는 미흡한 상황이었다. 도시계획에 대한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었으나 실행 체계와 방식이 부족하던 시기에 서울시는 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해 여의도와 잠실지구를 개발했다. 그리고 이 개발계획에는 건축가와 도시계획가가 순차적으로 참여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건축가의 계획과 도시계획가의 계획 간 차이는 충분히 연구 조명되지 않았다. 이 연구는 1960~70년대 도시개발사업에서 건축가들이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도시계획에 접근하여 어떤 계획안을 제시했는지를 밝혀 보기 위해 시작했다. 특히, 이 시기의 건축가들이 제안한 계획안이 실제로는 실현되지 못하고 도시계획가에 의해 수정·변형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이러한 변형이 어떠한 이유로 이루어졌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밝히고자 했다. 도시계획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건축가와 도시계획가의 접근 방식의 차이를 분석함으로써, 건축설계와 도시계획이라는 두 영역의 경계를 가늠할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하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 하에, 본 연구는 여의도와 잠실 종합개발계획 사례를 중심으로 건축가와 도시계획가의 참여 과정에 영향을 미친 다른 주체들도 함께 분석하고자 했다. 이는 도시계획이 건축설계와 달리 공공의 영역에 있으면서 그 파장이 크기 때문에 이에 관여하는 주체들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또한, 여의도와 잠실의 종합개발계획이 이후 도시계획에 끼친 영향을 조명하며 도시개발사업의 실현과정 속에서 건축설계와 , 도시계획의 영역이 각각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규명하고자 했다. 연구의 직접적인 분석대상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 사이에 이루어진 여의도와 잠실지구의 종합개발계획이다. 그러나 해당 계획을 도시계획적 맥락 아래에 온전히 해석하기 위해서는 해당 계획이 수립된 제도적·정책적 상황 등 도시계획 환경 전반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당시의 도시계획 관련 법과 제도, 계획수립 과정, 서울시의 정책 기조, 건축계와 도시계획계의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였다. 여의도와 잠실의 각 계획에 대해서는 도시계획 차원에서의 수용인구와 밀도, 토지이용계획, 도로망 및 블록 계획, 그리고 오픈스페이스 계획의 차이를 중심으로 분석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낸 특성을 당시의 도시계획 이론과 적용 방법 등을 바탕으로 해석했다.
도시의 급격한 성장으로 도시계획에 대한 필요성이 절실해진 1960년대 서울시의 도시계획 구상은 도심부의 재개발과 미개발지에 대한 신시가지 조성이라는 두 축으로 전개되었다. 도심부에는 고밀·고층 개발과 도시의 입체화가 지향되었고, 신시가지는 계획적이고 이상적인 도시 공간으로 조성되기를 기대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서울시는 여의도를 새로운 중심지로 육성하고자 하였으며, 이에 따라 고밀·고층 개발이 시도되었다. 이 과정에서 고층건축에 전문성을 지닌건축가들이 계획에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여의도와 잠실지구에 종합개발계획이 수립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한강개발사업의 하나로 시행된 공유수면매립사업 덕분이었다. 서울시는 공유수면매립사업을 통해 매립지를 직접 확보함으로써 도시계획을 주도하고자 하였으며, 이는 당시 일반적으로 채택되던 토지구획정리사업과 구별되는 방식이었다. 구획정리사업이 민간 소유 토지를 기반으로 한 정비 중심의 개발이었다면, 공유수면매립사업은 신규 토지를 창출하고 사업자가 계획단계부터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시계획 수립을 보다 강하게 보장하였다 그러나 . 실제로는 공유수면매립사업에 막대한 이권이 개입되어 다수의 민간 및 행정 주체들이 얽히면서, 서울시가 애초 구상한 전면적 개발 권한의 확보는 한정되었다.
여의도 개발계획은 68년, 69년 그리고 71년의 계획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중 초기 계획이라 할 수 있는 68년과 69년 계획은 건축가 주축의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가 수립했으며, 71년 계획은 도시계획가 주축의 도시 및 지역계획연구소에서 수립했다. 건축가 주축의 초기 계획의 경우 여의도의 지형적 특성을 반영한 도로와 블록 계획을 제안했으며, 상징적 공간체계, 보편적 적용을 염두에 둔 구조화된 공간체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적 특징은 71년 계획에서 사라지고, 당시의 현실 여건을 반영한 계획이 수립됐다. 71년 계획은 매우 제한적인 상황 속에서 서울시와 중앙정부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수립되었고, 계획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잠실지구 개발계획의 경우, 70년, 71년 그리고 74년 계획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중 70년 계획과 74년 계획은 종합개발계획으로 수립되었고, 71년 계획은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위한 것이어서 성격이 달랐다. 잠실의 70년 계획은 건축가 주축의 한국기술개발공사가 수립했고, 74년 계획은 도시계획가 주축의 신도기술개발공사가 맡았다. 잠실의 70년 계획과 74년 계획은 평면 구성에서 차이가 있는 듯 보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70년 계획의 영향이 상당히 반영된 요소들도 존재한다. 74년 계획은 상대적으로 계획밀도가 높았음에도 70년 계획과 비교하면 입체적 공간구성을 신경 쓰지 않았다.
70년 계획은 입체적 구상에 중점을 둔 건축적 제안을 보인 반면, 74년 계획은 평면적 가로망과 가곽의 구축에 중점을 두었다. 잠실지구내 종합경기장에 대한 제안에서는 70년 계획이 구체적인 건물 배치와 입면도까지상세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74년 계획은 조감도와 함께 개략적인 형태만을 제시해 계획의 구체성과 공간구성에서 무엇을 우선시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개발계획을 다시 수립하게 했던 주요 요인은, 계획에서 일반적으로 고려하는 해당 지역의 경제적, 사회적 요구, 도시적 수용여건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서울시 도시기본계획이 수립되었다는 계획 체계상의 변화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계획가들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개입되어 있었고, 이것은 개발사업을 다시 계획수립의 단계로 되돌아가게 했다. 계획을 수정한 주체는 개발사업이 단순히 그 지역에 살게 될 주민만을 고려하여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제로 경험하게 되었다. 이는 도시계획이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를 경험하게 했다. 실제적인 계획안을 작성하는 데 있어 당시 도시계획 이론은 여의도와 잠실지구 계획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이를 적용하는 방법은 계획마다 차이가 있었다. 그중의 하나는 지역의 중심지 배치 방법에 있어서 선형(線形, 혹은 帶狀形)의 중심지를 두는 것이었다.
69년 여의도 계획에서는 이를 확대해석하여 서울의 마스터플랜까지 확장하고자 했고, 70년 잠실지구 계획에서는 해당 지구의 확장을 염두에 두었다. 74년 잠실 계획에서는 지구를 자족적으로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초기 여의도 계획에서는 선형의 중심시가지를 입체적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초기 잠실 계획에서도 유사한 제안을 보여주었다. 주거지에 대해서는 근린주구 방식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보여준다. 주구의 규모 및 커뮤니티의 중심 시설에서는 차이가 있었으나 모든 시가지 개발계획의 주거지역은 대체로 근린주구 방식 등을 활용했다. 밀도와 도로의 관계 등을 고려해 근린주구 형식을 완성한 것은 74년 잠실 계획이었다. 초기 여의도 계획과 잠실 계획을 수립한 주체는 입체도시화의 계획개념을 확대해 공간이용계획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고밀화를 추구하는 당시 분위기 속에서 토지이용계획에 크게 나뉘는 공간이용계획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실현하려했으나 소유권 문제나 서울시 전체 용도계획과 같은 제도적 여건이 갖추어져야 했기에 실현하지 못했다. 그들은 도시에 대한 아이디어를 연역적으로 풀어나가며 도시공간에 적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예상치 않은 외적 요건으로 . 인해 계획의 실현 기회를 얻지 못한 건축가들은 부지 내의 건축에 집중하며 입체적 계획을 이어갔다. 이들은 건축 설계작품을 통해 자기 생각을 구체화하고, 계획의 결과를 공유했다.
수정계획을 주도한 주체는 외적 여건의 수용과 계획체계 수립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다양한 요구와 필요 기능에 따라 토지 배분을 우선하고,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파악하여 이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도시계획을 추구하게 되었다. 입체적 공간계획에 대한 요구는 미뤄 두었고, 계획을 체계화하는 연구와 협업을 통해 계획체계, 계획이론의 정립, 교육 등에 매진하게 되었다. 일련의 계획과정을 거쳐 완성된 지구 차원의 종합개발계획은 이후의 건축과 도시계획이 전문적 분야로 자신의 영역을 발전시키는 데 영향을 주었다. 도시가확장됨에 따라 대규모의 복합 기능의 건축물이 필요해졌으며, 대규모 시가지 개발사업에서 종합개발계획이 활용되었다. 공공 공간은 기능 이상의 것을 원하게되면서 도시설계, 상세계획 제도가 도입되어 궁극적으로 지구단위계획으로 발전하였고, 종합개발계획을 만들어낸 일련의 사업방식은 택지개발사업으로 넘어가며 또 다른 지구 차원의 종합개발계획을 만들어냈다. 본 연구는 1960-70년대 수립된 여의도와 잠실의 개발계획을 검토하여 건축설계와 도시계획의 영역에서 갖는 의의를 조명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비록 실현되지 않은 계획이라 할지라도 각기 건축과 도시계획적 의미가 있음을 밝혔다. 향후 공간적 시간적 범위를 확장해 건축과 도시 간의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Since the 1960s, Seoul has experienced unprecedented industrialization and urbanization. The decades of the 1960s and 1970s, often referred to as a period of "compressed growth," were marked by aggressive urban development initiatives across the city. Yet, prior to the large-scale development of Yeouido and Jamsil, Seoul's urban planning system lacked the maturity and coherence necessary to guide such transformations effectively. While the need for urban planning was widely acknowledged, institutional and procedural frameworks remained underdeveloped. Amidst this context,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 initiated master plans for Yeouido and Jamsil.
A distinctive feature of both projects was the sequential involvement of architects and urban planners. However, the conceptual and methodological differences between these two professional groups have not been sufficiently examined. This study investigates how architects became involved in urban development during the 1960s and 1970s, how they approached planning, and what types of proposals they advanced. Central to this inquiry is the observation that many architect-led plans were either substantially revised or ultimately replaced by urban planners—a process that warrants further exploration.
By analyzing the divergent approaches of architects and urban planners in formulating development plans, this study

발행 정보

2025. 서울시립대학교 일반대학원 국내박사 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