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을 중심으로 서울 도시구조의 형성과정을 분석했다.
초록
본 연구는 서울이 한강 이남으로 행정구역이 확장된 후 오늘날 서울의 도시구조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서울도시구조에 관한 기존 연구는 서울의 도시구조가 서울도시기본계획의 변천에 따라 형성되었을 것을 전제로 하지만 서울도시기본계획은 1966년, 1970년, 1978년, 1980년, 1984년, 1988년에 이르기까지 법정계획으로 완전하게 채택된 적이 없었다. 서울도시기본계획은 계획의 가장 중요한 전제인 목표인구설정에서 줄곧 예측에 실패했고, 상위계획과의 정합성때문에 계획내용이 불일치하면 조정하든지, 발표되지 못한 채 백지화되기도 했다. 급격한 도시화에 의해 계획의 비현실적 한계가 드러나면 새로운 대안적 담론이 등장하여 이를 검토해야 했다. 무엇보다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현실적 도시개발은 계획과는 별도로 우발적으로 발생하기도 하여 도시계획은 이를 뒤쫓아가야 했다. 이렇듯 서울도시기본계획은 빈번하게 수정되었기 때문에 계획으로서 일관성,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려워 서울의 도시구조에 온전한 영향을 끼쳤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서울도시구조의 복잡성은 일련의 도시계획뿐 아니라 계획이 변경된 지점에서 담론, 현실적 개발에 의해 형성된 층위가 중첩된 결과다. 본 논문은 이러한 계획, 담론, 현실적 개발의 층위들을 면밀하게 고찰하므로써 현재 서울도시구조를 이해하려 하였다.
본 연구는 서울의 도시구조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오랜 역사를 통해 유지해온 동심원구조에서 다핵 격자형 구조로 도시구조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사건인 1977년 서울도시기본구조연구와 이를 통해 이루어진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 주목했다. 1970년대 후반 서울도시기본구조에 대한 이러한 논의와 계획은 한국도시계획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서울도시구조에 대한 최초의 공개적 논의이자 집단적 연구로서 지금까지도 서울도시기본계획과 서울도시구조에 영향을 주고 있다. 서울은 1960년대 대서울계획에서 동심원구조로 구상되고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다핵 격자형 구조로 전환된 이후 도시구조 골격을 제시하는 거대담론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 시기에 서울도시구조의 골격이 거의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서울도시기본계획(1978)을 중심으로 서울도시구조의 변천을 고찰하는 것은 서울도시구조가 형성된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즉,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서울의 도시구조 골격을 이루는 도시기본구조 모형으로 1950-70년대 중반까지는 대서울계획에서 동심원구조로 구상되었고,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다핵도시구조로서 격자형 구조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선형도시구조는 앞의 두 가지 모형이 계획적 한계를 드러낼 때마다 대안적 담론으로 검토되었다.
동심원구조는 1950년대에 수도 대서울을 건설하기 위한 국가차원의 계획으로 대서울계획에서 처음 구상되었다. 이는 현대 서울의 도시계획이 초기부터 지역계획의 일환으로 구상되었고, 서울도시구조가 서울대도시권 동심원구조의 일부임을 의미했다. 대서울계획은 애버크롬비의 대런던계획(1944)을 기본 모형으로 삼아 서울대도시권을 동심원적으로 구성하였고, 서울단위도시는 이에 포함되어 ‘1핵 부도심체계-방사환상형 가로망체계-동심원적 영역’으로 구성되었다. 서울의 동심원구조는 도시의 장래 성장에 대해서는 선형적 발전이 가미된 ‘성형星形의 동심원 형태로, 용도기능이 철저하게 분리된 도시구조’였다. 서울의 동심원구조는 처음 구상된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서울도시계획의 기조로 유지되는데 1966년, 1970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동심원구조가 일부 수정된다. 1966년에 수립된 《서울도시기본계획》은 1950년대 대서울계획이 1960년대에 계획주체가 건설부와 서울시로 나뉘어져 각각 실행되면서 발생한 계획적 불일치에 대해 서울도시계획을 서울대도시권계획에 부합하도록 조정하였다. 또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서울시가 영동지구의 도시개발을 독자적으로 추진하므로 한강 이남의 방대한 영동지구 일대 전체가 슈퍼블록의 격자구조로 구성되었고 서울의 동심원구조는 순환선 내부에 격자형태로 채워진 형태로 변형되었다.
이로 인해 1960년대 중반 서울대도시권 동심원구조에 대한 대안으로 HURPI가 제안한 선형도시구조에 영향을 받은 건설부가 기존의 동심원구조를 토대로 한강 이남을 선형적으로 개발하려는 절충적 구상은 무산되었다. 한편 서울도시기본계획(1966)도 수정되어야 했는데, 서울시는 1970년《서울도시기본계획 조정수립》에서 영동지구개발의 현실을 반영하여 기존의 동심원구상을 수정했다. 즉, 1950년대 대서울계획의 동심원구조는 서울인구 100-200만 명일 때 구상된 것으로 1970년 초 당시 서울인구가 이전 계획의 목표 인구였던 500만 명을 넘어선 상황이므로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동심원 지대를 개량하고 구체화하여 계획했다. 이때까지 서울의 동심원구조 구상은 일부 변형되었지만, 잘 유지되었다. 그러나 영동지구에 고밀개발이 선언되고 구도심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평면적으로 확산되면서 동심원적 공간 질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이러한 시가지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영국의 그린벨트 제도를 참고하여 1971년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하고 제도화했는데 이로 인한 서울의 외연적 환산이 불가능하게 되자 개발압력은 내부시가지의 수직적 팽창으로 번졌고, 1970년대 중반 서울인구가 700만 명이상으로 증가하여 단핵의 동심원구조는 현실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격자형구조는 1978년 《(2000년대를 향한)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소기의 목적달성에 실패한 단핵 동심원구조를 탈피하고, 인구 1000만 명을 향하고 있는 거대도시 서울에 적합한 다핵도시구조 모형으로 새롭게 제시되었다. 1970년대 중반 김형만의 삼핵도시구상에서 촉발된 서울도시기본구조의 논의(1977)에서 집단적으로 연구되어 합의된 결과이다. 1977년 서울도시기본구조연구에서 계획가들의 제안은 도심의 기능을 재편성하여 다핵화하는 개념적인 대안이었지만, 여기에 다핵화를 구현하기 위한 물리적 구조의 개념과 형태가 단순하게나마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다핵 격자형구조가 구상되었는데 이전에 제안된 적이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도시구조로서 다핵화를 유도하는 서울도시구조의 물리적 근간이 되었다. 서울도시기본계획(1978)의 다핵 격자형구조는 도심의 일지점으로 집중되는 동심원구조를 탈피하여 다수의 도시핵이 한강을 중심으로 균형적으로 배치되었다. 한강과 산지가 도시공간에서 중심축을 이루고, 서울 전 시역을 포괄하며 서울대도시권에 연접한 순환선에 의한 경계를 넘어서 다방향으로 확장되는 격자구조였다. 즉, 거대한 외곽순환선 내부의 열린 격자형 가로망 결합체계였다.
서울 간선가로망의 격자화는 토지구획정리에 의해 한강 이남까지 이미 진행되고 있어 이러한 방식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다핵 격자구조는 시가지가 무질서하게 확산되어 부분적으로 형성되는 도시개발 추세를 정비하는 전체 도시구조 틀로서 제시된 것이었다. 이러한 틀 속에서 전 시역을 포괄하는 생활권계획이 커뮤니티 단위의 물리적 계획으로 제시되므로써 도시구조의 뼈대에 살을 붙여주게 되었고, 파편적으로 존재했던 도시의 기능배분, 가로망계획과 함께 연계되어 물리적 도시구조의 근간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도시기본계획(1978)은 정부가 주도하는 상위계획의 변경으로 발표되지 못했으나 1990년 확정된 법정계획의 원형으로서 유지·수정 발전되었다. 선형도시구조는 격자형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서울도시기본계획(1980)에서 부분적으로 도입되었다.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제안된 격자형구조는 그 일반적인 도시구조의 속성이 시가지의 ‘확산’을 허용하므로, 이 격자형 구조만으로는 다수의 도시핵과 그 하부구조를 구성할 수 없었다. 선형도시구조는 격자형구조를 토대로 도시기능의 계층적 분산과 시가화 관리·통제를 보완하기 위한 대안이었다. 1970년대 중반에 서울시는 삼핵도시구상 논의에서 독자적으로 도심, 영등포, 영동의 3핵을 연결하는 순환선 지하철 건설을 추진했었는데, 선형도시 대안은 이를 토대로 계획되었다.
역세권계획에 의한 도시정비전략, 일명 ‘로사리오(Rosario) 계획’이 그것이다. 로사리오개념을 적용한 지하철 순환망은 규모가 커진 도시공간에서 분산된 핵 간의 접근성이 강화되고, 핵을 중심으로 그 하부구조가 공유되어 도시기능이 다방향적으로 유연한 분산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도심과 한강 이남을 연결하는 서울 내부의 도로망 순환선의 부재를 메꾸는 한편, 단순한 교통계획을 넘어서서 도시구조적 차원에서 생활권계획, 토지이용계획과 연동되는 체계로 구성되었다.서울의 도시구조는 서울도시기본계획의 법정화가 지연되고 빈번하게 변경되면서 무계획적으로 형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제안된 동심원구조, 격자형구조가 혼재하며 구현되었다. 1978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서 격자형구조로 도시구조의 기조가 전환되었지만 동심원구조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부분적으로 구현되며 확실하게 흔적을 남겼다. 동심원구조(1핵 부도심-방사순환형가로체계-동심원적 영역)에서 동심원적 개발제한구역은 정부의 강한 행정력으로 갑자기 추진되어 실현되었고 방사순환형 가로망도 구축되었지만 동심원적 공간질서는 서울시가 단독으로 추진한 강남개발에 의해 무력해졌다. 개발제한구역은 서울도시기본계획(1966)에서 구상한 대로 1970년대에 실현되어 동심원적 영역의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또한 방사선 도로도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70년대 말에 완성되어 동심원구조의 골격을 형성했다. 1960-70년대 도시개발에서 도로건설이 큰 부분을 차지했고, 서울시의 확장이 토지구획정리에 의한 도로의 연장·건설과 택지개발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순환선도로는 방사선도로와 동시에 부분적으로 존재했지만 제기능을 못했고, 신설도로의 필요성만 커지다가 서울도시기본계획(1978)에서 격자형구조로 전환되어 약화·조정되었다. 동심원 구조의 제3순환선 일부 구간인 남부순환로가 건설되면서 1980년대 도시계획에서 순환선계획이 재등장했지만 결국 추진되지 못했고, 남부순환로만 그 흔적으로 남았다. 순환선은 뒤늦은 1980년대 말 건설되어 서울 내부에서 유일하게 완전한 순환형태의 도시고속도로가 되었다. 그러므로 서울의 동심원구조는 도심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뻗어나가는 방사선 도로망에 순환형 도로망이 구성되어 그 얼개를 갖추었고, 서울을 둘러싸는 동심원 형태의 거대한 그린벨트에 의해 도시구조적 틀이 남아있다. 격자형 구조는 동심원구조가 정착되는 와중에 서울의 확장된 시역인 한강 이남에 이루어진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중심으로 구축되었다. 서울의 도시구조 전체가 한강을 중심으로 균형을 이루게 되었고, 한강이 중심축이 되어 서울의 도시구조 골격을 격자구조로 유도하는 동서, 남북방향의 간선도로들이 건설되었다.
1980년대 말에는 서울대도시권으로 연계되는 남북축, 동서축의 도시고속도로가 건설되어 서울의 격자도시구조는 서울대도시권에까지 격자화, 네트워크화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그리고 격자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한 선형도시 로사리오계획은 3핵을 연결하는 서울 내부의 유일한 순환선 지하철 2호선을 중심으로 서울이 다핵화되는데 일조했고, 실제 역세권계획에도 영향을 주었다. 결론적으로 서울은 동심원구조, 격자형 구조 어느 한쪽으로만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변형되고 중첩되어 서울대도시권과 더불어 복잡한 다핵도시구조가 되었다. 서울의 도시구조는 동심원구조와 격자형 구조의 혼종적 형태라고 할 수 있으며 각 도시구조모형의 계획적 의도가 명확히 구현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도시구조모형은 서울이 거대도시로 성장하면서 각 시대적 상황에서 서울이 처한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적 여건과 한계 내에서 가장 적합한 대안을 검토하고 적용한 것으로,‘격자·순환형체제’로 명명될 정도로 서로 잘 수렴되었다고 할 수 있다.
After Seoul expanded its city area to the south of the Han River in the 1960s, it began to form today's urban structure by establishing the Master Plan of Seoul (1966), called the Greater Seoul Plan. In the plan, Seoul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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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국내박사 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