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정도전의 전제개혁론과 토지 소유권 재조정 주장을 연구했다.
초록
정도전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건국세력의 형성 시기는 1391년(공양왕 3) 5월 정도전이 척불운동을 전개하였던 때로 볼 수 있다. 종래 위화도 회군 이후 정도전이 줄곧 권력을 장악하고 조선 건국을 주도했다는 인식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1388년 위화도 회군 후 당분간은 조준을 비롯한 전제개혁론자들이 정국을 주도했고, 정도전은 오히려 소외되어 있었다. 정도전은 조준이 추진한 전제개혁의 방향에 동의하지 않았고, 그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개혁, 즉 소유권의 재조정을 통한 경자유전의 원칙 실현을 주장하였다. 교우관계에서도 조준 등 개혁파 신흥유신보다는 정몽주, 이숭인, 권근 등 반개혁세력과 가까웠음을 삼봉집의 시문을 면밀하게 조사해보면 알 수 있다. 정도전이 정치의 정면에 등장하면서 권력에 접근하는 시기는 1391년에 척불운동을 일으키면서부터였다. 정도전의 척불운동은 공양왕와 이색, 정몽주 등 반대세력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전제개혁의 성공 이후 개혁세력 내부에 팽배한 도취감과 정치적 이완에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성리학자로서의 본연의 자세를 촉구한 것으로서, 이전의 전제개혁이 중소지주의 계급적 이익을 보장하는 측면이 있었으므로 중소지주들의 참여를 이끌어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로부터 스스로 한계지어졌던 것에 비하여 훨씬 더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 척불운동을 거치면서 이성계 진영 안에서 정도전이 주도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고려말 정치의 중심인물로 부각되면서 그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세력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정치세력은 공민왕 이후 성리학 교육을 담당해왔던 성균관의 신진 학자들이 중심이 되었을 것이며, 이들이 곧 조선 건국세력으로 발전함으로써 조선 건국은 성리학적 이상의 실현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발행 정보
2005. 서울시립대학교 연구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