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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사와 영빈관에서 나타난 전통의 실험과 변용 (1932-1973) = Experiments and Transformations of Tradition at Bakmunsa and State Guest House

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로크와 노직의 재산권 개념 및 정당화 논변을 고찰했다.
초록
본 연구는 서울 남산 장충자락에 위치했던 박문사(1932)와 영빈관(1967)의 건축을 분석하여, 서로 다른 권력 주체가 ‘전통’을 어떻게 실험하고 변용했는지를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두 건축물은 동일한 대지 위에 시차를 두고 건설되었고, 각기 다른 정치적 목적을 위해 상이한 전통 양식을 차용했지만, 철근콘크리트라는 근대 재료로 구현되었다는 점에서 전통의 ‘실험’과 ‘변용’이라는 연속적인 맥락 위에 놓여 있다. 연구 대상지인 장충동 남소영 터는 조선시대 한양의 동쪽 경계에 불과했으나, 대한제국기 장충단이 세워지면서 왕조 국가의 기념 장소로 부상했으며, 식민지기에는 공원화와 도로·전차 노선 확충, 박문사 건립을 통해 식민 기념의 장소로 변모했다. 본 연구는 건축 분석에 앞서 대지의 입지적 조건을 분석하여, 해당 부지가 도심과의 접근성은 높으나 지형적으로는 고립된 이중적 특성을 지녔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입지적 특성은 장충동이 회현자락의 조선신궁·경성신사와 병렬적으로 존재하면서도 구별되는 독자적 위상을 확보하는 토대가 되었다. 조선신궁이 신메이즈쿠리(神明造) 양식으로 일본 제국의 권위를 직설적으로 표상했다면, 박문사는 젠슈요(禪宗様) 양식을 기반으로 조선식 요소를 혼합하여 ‘내선융화(內鮮融和)’를 도모하는 변주적 공간으로 기능했다.
해방 이후에도 이러한 구도는 조선신궁 터에 계획된 국회의사당의 ‘정치적 상징’과 박문사 터에 건립된 영빈관의 ‘외교적 의전’이라는 새로운 짝으로 이어졌다. 본 연구는 박문사와 영빈관의 배치, 평면, 입면, 구조를 상세히 분석하여 각 건축물에서 전통이 어떻게 실험되고 변용되었는지를 밝혔다. 박문사의 본당에서는 가마쿠라 시대의 젠슈요를 기반으로 조선식 창호·기단·천장 등의 건축 요소가 결합되었고, 부속 건물로 조선 왕실 건축물(흥화문·석고전·선원전)이 이축되었다. 이는 단순한 양식의 혼합이 아니라, 근대 일본에서 ‘아시아의 정신성’이자 ‘순일본식 사원 양식’으로 재정립된 젠슈요를 통해 조선의 전통 사찰과 유사성을 부여하면서도 일본의 정체성을 강조하려는 전략이었다. 특히 조선신궁에서는 실용성을 희생하면서까지 목조와 신메이즈쿠리를 고수한 것과 달리, 박문사는 철근콘크리트를 채택하여 내화·내진성과 함께 ‘영구적 기념성’을 확보했다. 해방 이후 영빈관은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국가의 정통성과 ‘한국성’을 국제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외교적 건축으로 기획되었다. 창덕궁 희정당·대조전의 평면 구성 배치, 궁궐 건축의 공포·단청·용두·잡상 등을 충실히 모방하여 국가 시설로서의 한국성을 시각화했다.
주목할 점은 영빈관이 1960년대 광화문·종합박물관 등 국가 주도 전통 재구축 사업의 시작점에 위치하면서도, 외관은 전통을 충실히 따르되 내부에는 서구식 설비와 현대적 인테리어를 결합하여 실용성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영빈관에서 철근콘크리트는 박문사와 달리 산업화된 국가의 위상을 상징했다. 기술적 측면에서, 박문사는 한반도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전통 사찰로 일체식 구조와 철골 핑크 트러스 지붕을 사용하여 전통 목구조의 외형을 재현했다. 영빈관은 해방 이후 전통 철근콘크리트 건축의 초기 사례이며, 박문사 철거 과정의 경험을 통해 동일한 구조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판단된다. 중요한 것은 철근콘크리트라는 단일한 재료가 시대적 맥락에 따라 상이한 의미를 내포했다는 점이다. 박문사에서는 ‘위인을 기념하는 영구적 건축물’로서 영속성을 상징했고, 영빈관에서는 전후 부흥기 시멘트 산업 발전과 맞물려 국가의 산업화와 근대화를 표상했다. 결론적으로, 박문사와 영빈관은 ‘무엇을 전통으로 선택할 것인가’라는 양식의 선택이 권력의 정치적 목적과 긴밀히 결합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전통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시대의 권력 관계와 이데올로기에 따라 끊임없이 실험되고 변용되는 가변적 산물이었다. 또한, 철근콘크리트와 철골이라는 새로운 재료는 선택된 전통을 구현하는 기술적 기반이자, 권력이 지향하는 상징성(영구성·근대성)을 표상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발견은 식민지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한국 근대 건축에서 전통과 권력, 기술이 교차하는 복합적 양상을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목차
제 1 장 서론 1 1.1 연구 배경과 목적 1 1.2 연구 대상과 방법 4 1.3 선행 연구 검토 7 제 2 장 남산과 장충동 일대의 변화 15 2.1 대한제국기 국가 의례시설로서 장충단 건립 15 2.2 남산의 공원화와 장충단 공원의 설치 19 2.2.1 남산의 공원화 19 2.2.2 장충단 공원의 설치 21 2.3 남산의 종교시설과 박문사 건립 27 2.3.1 남산 회현자락의 신도(神道) 시설 27 2.3.2 박문사의 건립 30 2.4 해방 이후 영빈관 건립 35 2.4.1 해방 이후 남산 종교시설의 철거 35 2.4.2 이승만 정권의 남산 재점유와 국회의사당 계획 37 2.4.3 장충동 영빈관 건립 43 제 3 장 박문사영빈관의 입지와 건축 분석 52 3.1 부지의 형성과 도시적 맥락 52 3.1.1 토지 분할과 소유권 변화 52 3.1.2 도시 인프라와 경관 변화 59 3.2 박문사의 건축 분석 70 3.2.1 배치 분석 70 3.2.2 평면 분석 75 3.2.3 입면 및 의장 분석 86 3.2.4 구조 및 재료 분석 95 3.3 영빈관의 건축 분석 103 3.3.1 배치 분석 103 3.3.2 평면 및 기능 분석 107 3.3.3 입면 및 의장 분석 110 3.3.4 구조 및 재료 분석 121 제 4 장 박문사영빈관의 전통 실험과 변용 127 4.1 권력 공간으로서의 부상 127 4.1.1 남산 회현자락과의 관계 127 4.1.2 기념과 공공 기능의 지속과 전환 131 4.2 전통 양식의 전략적 재구성 137 4.2.1 박문사의 양식 혼성: 젠슈요조선식신사배치의 결합 137 4.2.2 영빈관의 한국

발행 정보

2026.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내석사 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