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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개인소유제 인식과 개인상공업 정책(1945-1950)

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해방 직후 북한의 개인소유 인식과 토지개혁·개인상공업 정책을 살폈다.
초록
자본주의시대에 들어 확립된 사유제는 부르주아지의 생산수단 독점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판대상이 되었다. 그들의 부정적 사유관은 해방 후 좌파 헤게모니가 관철된 38이북지역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자본가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넘어 세금정책·고용행위·임대업 등 여러 현실영역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쳤을 만큼, 부정적 사유관은 사회전반에 걸쳐 견고한 입지를 구축해 갔다. 한편 그와 다른 흐름에서 사유제의 긍정적 기능을 둘러싼 논의가 토지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토지개혁에 따른 토지사유화가 생산력 증대를 이끌어 경제발전에 기여하리란 전망이 논의의 요지였다. 해방직후 일제통치의 종식에 따른 경제운영체계 와해는 사유제를 둘러싼 양면적 대응을 유발했다. 물가등귀와 식량부족사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양곡 성출 등 사유권을 제한하는 식의 국가개입이 적극화되었다. 토지개혁과 중요산업국유화조치도 기존 지배층의 물적 기반 해체를 모색했다는 점에서 사유권 제한조치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반면 해방직후의 생필품 부족사태는 사유권 보호를 강조하는 흐름을 낳았다. 사유권을 보호해야만 민간기업들의 적극적 활동을 이끌어내, 생필품 증산을 촉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간기업가들이 지닌 기술·경영역량은 국가의 민간기업 육성정책에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다.
1948년에 공포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은 생산수단의 소유형태로서 국가소유·협동단체소유 외에 개인소유부문이 공존하고 있음을 명시하였다. 그러나 이 세 소유형태에 동일한 위상이 부여된 것은 아니었다. 자본주의와 친화력을 지닌 개인소유에 대한 거부감이 극복되지 못함에 따라, 북한 혼합경제의 중추적 위상은 국가소유와 협동단체소유에 부여되었다. 경계의 대상으로 지목된 개인소유의 허용한도는 중소상공업까지였고, 국유화된 대기업·중요기업의 경우 사유화가 금지되었다. 개인소유의 한계가 설정된 까닭은 대자본가와 독점대자본의 발생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당국이 상한으로 설정한 중소기업의 규모는 노동자 수 50인 정도를 고용한 업체였다. 헌법공포 이전, 1946년 말부터 사유재산권의 보호를 모색한 법령들이 잇따라 제정되었다. 이 법령들은 지방행정기구의 권한남용에 따른 사유권 침해를 불법행위로 규정함과 아울러, 해방직후 혼란한 시기에 발생한 사유재산 침해사건들의 시정을 지시하였다. 사유권 보호와 관련해 토지부문에서도 의미 있는 조치가 시행되었다. 토지상속권이 보장됨과 아울러 국가의 사유토지 침해 시 적당한 보상규정들이 마련되었다. 심지어 토지소유구조의 분화를 통해 5정보 이상의 토지를 보유하게 된 부농들도 법령 개정에 따라 소유권을 보장받았다.
국유재산과의 이해관계 충돌 시에도 사유재산권이 보호될 수 있었던 몇몇 재판사례가 보여주듯, 사유권은 안정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사유제의 확립은 민간기업의 발전과 자본가층의 성장에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민간기업의 발전은 1947년 초에 본격화된 국유기업 방매조치로부터 추진력을 얻을 수 있었다. 1947년 인민경제계획 시 전체 생필품 생산액의 84.7%가 민간산업부문에 할당되고, 같은 해 민간기업 수가 국영기업의 5∼6배에 달했을 정도로 민간기업의 성장속도는 괄목할 만한 추세를 보였다. 민간기업이 발전함

발행 정보

2011. 연구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