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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溪家와 牛耳洞 = Yigye-ga(耳溪家) and Wooyi-dong(牛耳洞)

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조선 후기 우이동의 가문 소유화 과정과 관련 문헌을 살폈다.
초록
우이동은 이계 홍양호에 의해 풍산 홍씨 가문에 귀속되었다. 이계는 과거에 급제한 뒤에 조상의 무덤이 있는 우이동을 자기 가문의 소유로 만들기 위해 노력을 경주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소유하게 된 우이동에 대한 이계의 관심과 애정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조상의 무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정식으로 풍산 홍씨의 소유가 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소유권을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우이동에 별장을 경영하면서 우이동의 승경을 발굴하고 이에 대한 기록에 힘썼던 것으로 보인다. 관암은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이계를 의지해 성장하였다. 관암은 우이동에서 이계를 모시고 생활하던 때를 가장 행복했던 시절로 추억한 바 있다. 그리고 관암은 평생 이계의 기업을 잇고 이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 결과 가운데의 하나가 우이동에 관련한 저술이다. 관암의 문집 곳곳에 남겨진 이계에 대한 추억을 보면, 관암은 언제나 이계의 기업을 제대로 잇고 있지 못하였음을 탄식하고 있다. 약 200여년 전에 이계와 관암이 남긴 이러한 기록들이 오늘날 의미를 지니는 것은 무엇일까? 본론에서도 보았듯이 지금의 우리가 우이동을 대상으로 한 관암의 시를 감상하면서 관암의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관암 시대의 우이동과 현재의 우이동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판이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조상의 숨결이 묻어 있는 자신의 공간을 아름답게 인식하고 가꾸어 나갔던 관암의 자세와 현대의 난개발과는 너무나도 많은 차이가 있다. 이 땅은 영원히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잠시 빌려 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후손들에게 보다 아름다운 환경을 남겨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200년 전 이계와 관암의 우이동 관련 기록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아닐까 생각한다.

발행 정보

2004. 한국한문학회 『한국한문학연구(Journal of Korean Literature in Classical Chinese)』 Vol.0No.33[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