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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반 서울 ‘동북권’ 개발과 도봉구 생활환경의 변화

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1980년대 중반 서울 동북권 개발과 도봉구 생활환경의 변화를 살펴본다.
초록
This paper focuses on the late 20th century and examines the process how Dobong-gu in Seoul became as it is. The mid-1980s was a time when the new military forces tried to achieve both “social stability” and economic growth through urban development projects. It is also a time when Dobong-gu, located outside of northeastern Seoul, upraised as a place to solve the housing shortage problem. In addition, the huge trend of “regeneration of the Seoul metropolitan area” was carried out with legal biasis. In the midst of these changes, Dobong-gu has undergone various changes to be now.
Dobonggu, which was composed of a large area from the time it was made, was not a space consisting of a single identity. Some took a role as residences outside the city, and the others played role as factory zones and shackles. In the Seoul Metropolitan Government's urban development project conducted by the new military in the 1980s, Dobong-gu was shown differences in the development speed of the left and right sides based on the Jungnang-cheon. As a result, the value of real estate in the current Dobong area has been forced to fall relatively low.
On the other hand, Changdong, which used to be a factory zone, has been transformed into a large apartment complex over a long period as part of the renovation of the Seoul metropolitan area. 본 논문은 서울의 동북부 지역 중에서도 도봉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 는지 20세기 후반이라는 시점에 집중해 연구한다. 1980년대 중반은 신군부세력이 도시개발 사업을 통해 ‘사회의 안정’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성공시키려 했던 시기이다. 또한 서울 동북지역 외각에 자리한 도봉구가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간으로 주목받은 시기이다. 더불어 당시는 ‘수도권 정비’라는 거대한 흐름이 법적 근거를 가지고 집행된 시점이기도 하다. 국제스포츠 대회 유치 도 서울의 경관변화에 한 몫을 했다. 서울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해야 했다. 때문에 당시 서울의 도시개발은 단순히 주거문제 해결을 위한 사업을 넘어 그야말로 획기적 인 수준의 공간변화가 요구되었다. 이러한 변화들 속에서 도봉구는 여러 변화를 거쳐 現도봉구의 모습을 갖췄다. 만들어질 당시부터 넓은 면적으로 구성되었던 도봉구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구성된 공간이 아니었다.
일부는 시 외곽 거주지로써의 역할을 했지만, 또 다른 일부는 공장지대와 판잣집이 가득한 지역도 있었다. 본고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 하에서 1973년 도봉구가 만들어질 때 덧씌워진 ‘외곽’이라는 이미지가 어떻게 구 內의 분절된 생활권을 만들어갔는지 확인한다. 또한 정체되 어 있던 도봉구의 도시개발사업이 서울 ‘동북권’ 개발이라는 호재를 만나 ‘창동지구’개발로 연결될 수 있었던 과정도 함께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창동개발 이후 도봉구 전체로 번진 주택개발로 인해 도봉구라는 공간이 어떻게 분화되고 변화해갔는지를 확인할 것이다. 1980년대 신군부에 의해 진행 된 서울시 도시개발 사업에서 도봉구는 중랑천을 기준으로 왼편과 오른편의 개발 속도에 차이를 보였다. 때문에 현 도봉지역의 부동산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창동지구’ 개발은 시기도 비슷했고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는 점에서 마들평야 개발과 비교되기 좋았다. 다만 두 개발 사업은 서울의 주택부족 문제를 해결한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계획과정부터 차이를 가지기 도 했다. 생활권 차이와 재개발 조건의 차이도 컸지만 행정적으로 추진과정에서 차이를 보였다. 창동이 서울의 대표적 공장지대였기 때문이다. 창동의 공장은 오랜 시간에 걸쳐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화해 갔다.

발행 정보

2019.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Vol.29 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