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고려 말 사전의 의미와 토지 소유 개념을 역사적으로 분석했다.
초록
고려시대 ‘私田’ 개념은 식민성의 유산이다. 식민자들이 구상한 ‘私田’개념 즉 사유지, 혹은 개인 수조지라는 개념은 해방 후 오랫동안 역사연구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고 그 결과 근대적 사유와 개인 수조지라는 개념에 입각해 사료에 기술된 ‘사전’을 해석했다. 그러나 해석은 사료에 기술된 ‘사전’을 완전히 포획할 수 없었고, 다양한 해석이 추가되어 갔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이 사료에 기술된 ‘사전’을 역사가의 시선인 ‘근대적 소유권’ 혹은 ‘수조권’에 입각한 연구태도에 있다. 이에 본 연구는 사료에 기술된 ‘私田’을 그 맥락에 따라 분석해 그 의미를 추적했다. ‘사전’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 우선 고려사 세가에서 ‘사’의 용례를 추출해 각 왕대별 빈도수와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고려사 세가에서는 총 186회 ‘私’字가 사용되었다. 각 왕대별 전체 글자와 ‘사’자의 비율을 살펴보면, ‘사’자가 가장 많이 사용된 시기는 우왕대 이후이다. 의미도 전기에는 주고 ‘公私’가 연용되어 국가와 개인 혹은 관과 민간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후대로 갈수록 ‘마음대로/몰래’라는 의미가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그리고 ‘사’의 용례와 그 의미를 근거로 하면 ‘사전’은 ‘개인이 소유한 토지’, ‘개인이 마음대로 혹은 은밀히 한 토지’, ‘관전의 반대인 민전’ 등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사전’ 용례는 창왕 즉위 전제 개혁 논의가 본격화 되면서 폭증한다.
특히 창왕 즉위년 7월 일련의 전제 개혁 상소에서 ‘사전’은 나라의 근간을 해치는 것이자, 인륜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이들 상소에서 ‘사전’은, 나라의 토지에 대응하는 개인의 토지 혹은 민간의 토지라는 의미도 있으나 그들이 혁파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개인이 숨기거나 마음대로 한 토지’였다. 이러한 사전을 혁파하여 고려 본래의 제도로 회귀하는 것이 상소의 주장이었다. 이러한 ‘사전’의 의미는 이듬해인 창왕 원년 4월 도평의사사의 전제 관련 논쟁에서 변화하다. 이 때부터 조준은 ‘사전’과 고려의 제도, 구체적으로는 경기이외의 지역에 과전을 지급하는 제도를 동일시 했고, 이색을 반사전혁파론자로 규정했다. 이때부터 사전은 외방에 과전을 지급하는 제도와 동일시되었고 그것을 반대하는 이들은 사전의 혁파를 반대하는 이들로 간주되었다. 고려말 ‘사전’은 이처럼 정치 상황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었던 것이다.
발행 정보
2013. 연구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