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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토지소유구조의 변이 - 조선후기~일제초기 경기도 안산군의 사례 -

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조선후기부터 일제 초기까지 안산군의 토지소유구조와 국유·민유 변화를 연구했다.
초록
제1차년도 「궁장토·둔토의 변이와 국유·민유의 갈림길」 1) 안산군의 환경 먼저 안산군의 환경에 대한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 환경의 이해를 위해 지리적 검토는 필수적이다며, 일부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곳에 대한 답사, 현장조사를 통해 지역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할 것이다. 안산군은 해안과 갯벌, 작은 하천과 골짜기, 산악을 끼고 있는 곳으로 지형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그러한 차이를 파악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환경은 지리에 그치지 않고 호구, 조세의 측면도 파악해야 한다. 과거 마을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골짜기의 마을은 역사인류학의 현지조사와 같은 방식을 동원하여 깊은 이해에 도달해야 한다. 2) 궁장토·둔토의 등장과 변이 ; 석장둔, 장용둔, 용동궁장토 안산군의 장토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이 석장둔이다. 17세기 전반 해변과 하천을 끼고 있는 안산군 초산면 지역에 석장을 두르고 농지로 개간한 곳이 바로 석장둔이다. 이 토지는 한말에 이르기까지 유별난 소유권의 변이과정을 겪었다. 이 장토를 집중적으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또한 장용둔에서 절수한 둔토, 그리고 19세기 후반 용동궁에서 매입하여 설치한 장토도 흥미를 끈다. 궁장토·둔토를 유형별로 고찰하면서 변이의 양상을 비교해 보려 한다.
3) 광무양안에서 궁장토·둔토의 자리 ; 궁장토·둔토-시주-시작의 구조 조선후기에서 유형별로 변이의 양상을 비교한 결과를 광무양안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확인하여 보기로 한다. 4) 토지조사부에서 국유지의 명멸 ; 하중리, 하상리의 분쟁지 조선후기, 광무년간을 거쳐 토지조사사업에서 이 토지들이 어떻게 귀결되었는지 살피고자 한다. 국유지의 창출과 소멸 양상을 함께 살피고자 한다. 『경기도장토문적』의 10책에 이르는 안산군 관련 자료를 분석하여 국유화와 그 소멸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한다. 제2차년도 「광무양안과 토지조사부의 비교」 1) 광무양안에 나타난 계층분화 양상 최근 최윤오가 충청북도 진천군 전체를 대상으로 광무양안을 분석한 것이 주목된다. 군 전체의 필지수와 토지의 면적이 매우 넓기 때문에 작업 자체가 방대한데, 엑셀 등 통계분석방법의 진전에 따라 가능한 것이다. 다만 그의 연구는 광무양안을 분석하고 토지조사부의 불비로 그 대조는 시행하지 못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최윤오의 연구와 마찬가지로 안산군을 대상으로 군 전체를 포함하여 계층분화 양상을 분석하여 충북 진천군 산골짜기와는 달리 개항장에 인접한 수도권 농촌마을의 양상을 검토하려 한다.
2) 토지조사부에 나타난 소유분화 양상 토지조사부의 토지소유자 중심의 소유분화와 함께 제적부를 활용한 농가세대별 소유분화의 양상을 지역사례로서 확인해 두는 것은 소유분화의 구체성을 획득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안산군 전체 지역을 대상으로 분석함으로써 郡制 개편과정과 관련하여 새로운 관점을 얻기를 기대해 볼 수 있다. 3) 광무양안과 토지조사부의 대조 광무양안과 토지조사부(또는 토지대장)를 비교한 논문은 두편이 있을 뿐이다. 더 많은 샘플이 필요하며 특히 고생스럽지만 일개 군 전체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발행 정보

2006. NRF KRM(Korean Research Memory) 연구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