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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조선과 대만의 근대적 토지소유권 정리 비교 연구 : 영구적 소작 관습 도지(賭地) 및 소조(小租)의 법적 판정을 중심으로 = A comparative study of the modernization of land ownership in Korea and in Taiwan under Japanese rule: Focusing on the abolishment of perpetual tenure custom of Do-Ji(賭地) and Sio-Tsoo(小租)

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식민지 조선·대만의 근대적 토지소유권 정리 과정을 비교했다.
초록
일제 식민지배의 중요한 사건들 중 하나는 근대 민법의 절대적인 소유권 개념을 도입해서 식민지의 전근대 다층적 토지소유관계를 일지일주 토지소유제로 정리한 일이다. 전근대 동아시아 농경지 개간 사업에 농민이 지주와 함께 투자함으로써 영구적 소작의 토지권리를 얻었고 지주와 한 땅에서 병립했다. 이런 영구적 소작 관습은 조선 후기는 도지(賭地)로, 청나라 시기 대만에서는 소조(小租)로 통칭되었다. 일제 토지소유권 정리 과정 중 이 영구적 소작 관습이 어떻게 정리되었는지가 본 논문의 초점이다. 일제 토지소유권 정리 사업은 당시 일본 민법 전문가들이 맡아 기존 정부가 행한지조개혁과 이들 전문가가 맡아 진행한 현지 관습조사를 참조로 근대 민법의 원칙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전근대 다층적 토지소유관계를 근대의 물권과 채권의 개념으로 해석해서 법적 판정을 내리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런데, 비슷한 영구적 소작 관습인데도, 일제 토지소유권 정리 과정 중 도지의 토지권리는 몰수되었는데, 소조는 소유권으로 판정을 받았다. 도지와 소조의 운명이 왜 달랐는가? 조선 후기의 도지와 청나라 시기 대만의 소조를 비교해 보면 정부 지배력이 더 강했던 조선 왕조 아래서 도지의 권리가 상대적으로 약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일제 조선의 토지소유권 정리 사업 이전의 지조개혁과 지계발급 정책과도 관련이 있었다.
광무양전 사업에서 도지를 소지하는 중답주가 토지세를 납부하게 되였는데도, 당시 정부는 중답주에게 지주 자격을 인정해 주는 지계를 발급하지 않았다. 한편, 청나라 시기 소조의 권리는 전근대 조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했다. 그리고 청나라 말기의 청부 사업에서도 토지세 납부자로 여겨져 일부 소조호가 원 지주를 대신해 지계를 받았다. 전근대 정부의 마지막 지조개혁과 지계발급 사업을 일제 토지소유권 정리를 담당했던 법학 관료들이 중요한 입법 참고 자료로 삼았다. 그래서, 광무양전 사업에서 이미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도지는 일제 토지조사사업에서도 법상 불리한 처지에 빠졌고, 반면 소조는 토지권리를 청나라로부터 인정을 받아 일제 토지조사사업에서도 법상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전근대 정부의 지배력이 강했는지 약했는지에 따라, 그리고 전근대 정부가 영구적 소작을 지계 발급 대상자로 간주했는지에 따라, 도지와 소조에 대한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이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토지소유권 정리를 주도했던 일제 법학 관료의 법학 소양 또한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대한제국 부동산법조사회의 법학 관료들은 관습조사를 중요시하지 않으면서 조선의 토지관습을 기존 일본 민법의 법조에 억지로 끼워맞추는 방식으로 도지를 채권적 차지권으로 판정했고 보상 없이 몰수했다.
한편, 임시대만구관조사회 법학 관료들은 더 세밀한 토지 관습조사를 실행했고 근대 민법의 물권과 채권의 핵심 법리를 활용하면서 대만의 소조를 해석했다. 기존 일본 민법의 법조에 구속받지 않았고 물권과 채권의 구별 기준, 즉 토지에 대한 실제 지배력이 존재하느냐에 의해 원래 지주인 대조(大租)를 채권으로, 영구적 소작인 소조를 강대한 물권으로 판정했고 소조호를 지주로 인정했다. 결국 대만과 조선의 토지소유권 정리는 겉으로는 똑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차이가 상당했다.

발행 정보

2023. 서강대학교 대학원 국내석사 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