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17세기 한성부의 가대 소송과 판결 이후 소유권 확보 과정을 살폈다.
초록
본 논문은 조선시대 家舍 소송에 초점을 맞춘 연구이다. 풍속과 법률에서 가사는 노비와 토지 못지않게 중요한 재산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노비 및 토지에 관한 소유권과 이와 관련된 소송 연구는 활발히 이루어진 것에 비해 家舍訟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에 본고는 가사 소송의 진행사항과 판결을 통해 ‘가사 소송’의 양상을 규명하고, 소송이 종결된 이후 계쟁 가대가 매매 되는 경과를 살펴 송사 이후 소유권이 확립되는 과정을 밝히고자 하였다. 주요 이용 자료는 1638년 한성부 결송입안이다. 이 소송은 한성부 중부 敦寧府下契를 배경으로 원고 이무와 피고 최립 사이에서 발생하였다. 소송의 발단은 이무가 매득한 가사의 남쪽 부분 담장을 쌓는 중에 발생하였다. 원고 이무의 행위는 옆집과 구분 지을 수 있는 담장을 쌓음으로써 자신이 매득한 가대의 소유권을 명확히 하고자 한 것이었다. 이에 반발하여 피고 최립은 담장이 자신의 집 쪽으로 넘어 왔다고 주장하였다. 이 소송의 승자는 최립으로 종결된다. 그러나 4년 뒤에 최립은 이효남이라는 사람에게 계쟁 가대를 팔고 이효남은 매득한지 불과 2개월 만에 이무에게 되팔았다. 이 과정에서 이효남은 자신이 구입한 가격보다 10냥을 추가하여 이무에게 팔았다.
결국 4년이 지난 뒤에 계쟁 가대의 최종 점유자는 이무로 끝이 나고 이무는 자신의 소유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효남에게 넘겨받은 本文記와 決訟立案 1度 외에 斜給立案을 신청하여 발급받는다. 이들의 소송은 17세기 사회상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17세기에 발급된 1638년과 1661년 한성부 결송입안은 공통적으로 한성부 중부에서 발생한 가사 소송에 관한 내용이다. 조선 초기부터 한성부 내 가대 부족은 사회적 문제였다. 이것이 양란을 거치고 17세기에 들어서 더욱 증폭되었다. 그 결과 譯官, 軍官 등을 수행하기 위해 한성에 머물러야만 했으나 거처를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았던 상황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회상은 17세기 가사 소송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였고, 이를 17세기 한성부에서 발급된 결송입안을 통해 살필 수 있다.
발행 정보
2020. 한국법사학회 『법사학연구』 Vol.61No.-[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