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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민전의 성립과 그 생산력적 배경

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고려시대 민전의 성립과 생산력적 배경을 연구했다.
초록
1.고려시대 민전의 성립 한국사에서 어느 시기부터 공전,사전, 민전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하였는지는 사료의 부족으로 명확하지 않다. 현재 통일신라기에 공전이라는 용어가 보이고는 있으나 사전이나 민전은 고려시대에 들어와서야 사료상에 나타난다. 민전이라는 용어는 고려 현종13년에 처음 사료에 보인다. 공전이라는 용어는 신라통일기에 보이지만 사전 역시 고려시대에 처음 등장하는 용어이다. 전근대 한국사회의 여러 제도가 중국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고려 이전에 중국에서 널리 사용하던 토지용어가 도입되었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적문서상에서의 지목들은 村官謨田畓, 內視令畓, 烟受有田畓, 村主位畓, 麻田 등이다. 이에 대해서는 일일이 적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연구들이 있었으며 대체로 촌관모전답은 관청공해전에, 내시령답은 관료전에, 연수유전답은 민전, 촌주위답은 기인전, 군인전 등의 직역담당자층의 지목 등으로 비정되고 있다. 고려의 민전은 장적문서상 농민보유지로 보이는 연수유전답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간에는 단순히 용어의 차이가 아니라 신라통일기와 고려의 농민보유지의 소유권의 질적 차이를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양자의 차이를 부족한 사료로는 규명하기 힘들기 때문에 중국에서 민전이라는 용어가 역사적으로 어떤 변화를 보여왔는지 하는 것을 비교하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여겨진다.
중국사에서 사용된 공전,사전, 민전이란 용어는 주대로부터 춘추전국시대에 걸쳐 이미 등장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민전은 당 이전까지는 국가가 민에게 지급한 토지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농민적 소유권이 확립된 사유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당대에 들어오면 토지에 대한 개념에 상당한 변화가 오는 것 같다. 민전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고 대신 공전과 사전으로만 토지를 구분하였다. 이렇게 공전과 사전으로만 지목을 구분하는 것은 당대가 유일한 것 같다. 사전은 농민에게 세습적 보유용익이 인정된 세업전(영업전)과 관인신분에게 준 관인영업전, 그리고 국가에 의한 환수의 대상인 점유지인 구분전이 속했다. 공전은 관직에 주어진 직분전과 관청공해전이 속했다.그런데 양세법 단계가 되면 공전과 사전으로 분류되었던 토지는 관전과 민전으로 분류되었다. 양세법 단계의 민전은 용어만 같을 뿐 그 내용에 있어서는 당 이전의 민전과는 질적으로 달라진다. 양세법단계에서는 사실상의 농민적 토지소유의 광범위한 성립이라는 현실에 대응하여 세습적 토지소유를 법적으로도 농민의 소유지 즉 민전으로 공인하고 구분전도 민전화하였다. 즉 양세법 단계의 민전은 국가가 농민에게 분급한 토지라는 의미보다는 농민적 토지소유가 실현된 농민소유지라는 의미가 강하였다. 고려는 고려사 식화지 서문에 ‘高麗田制大抵倣唐制’라 하여 당제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고 있다.
고려는 토지를 크게 공전과 사전으로 분류하였다. 이것은 당제의 영향임이 분명하다. 토지지목을 공전과 사전으로 분류한 것은 중국에서도 당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려에서는 당과 달리 공전, 사전으로 분류하면서 민전이라는 개념도 같이 사용하고 있다. 민전이 고려왕조 국가재정의 근원이 되는 토지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연구자가 인정하고 있다. 고려에서 당의 균전제와 마찬가지로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급하였는가 하는 문제는 논란이 되어왔지만 필자의 입장도 균전제는 시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고려의 민전은 3과공전으로 분류된다. 당의 농민영업전과 구분전이 사전으로 분류된 것과는 큰 차이다. 고려의 민전은 사실상 농민의 소유지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고려와 동시대인 송대 민전의 개념을 수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3과공전으로 분류된 것은 송대에 비해 농민적 토지소유권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것이 송대의 민전 개념을 수용해도 고려의 한계를 드러낸 부분이다. 2. 민전성립의 생산력적 배경 연수유전답에서 민전으로 즉 국가가 농민에게 분급한 토지라는 의미에서 사실상 농민소유지로의 성장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농업생산력의 발전이 있어 가능하였을 것이다. 고려전기의 농업생산력에 대해서는 휴한단계설과 연작단계설로 견해가 나뉘어져 있다. 이러한 견해차는 고려전기 농업기술수준을 밝힐 수 있는 자료가 워낙 부족한데다
당시의 생산력 수준을 반영하는 田品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계통의 사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취를 위해 토지의 비척도에 따라 전품 구분을 하는 것은 중국에서도 양세법 이후였다. 고려에서 민전과 전품제의 성립, 중국 양세법과 비척도에 따른 전품구분과 민전의 성립은 같은 궤도선상에서 볼 수 있지 않나 한다.

발행 정보

2013. NRF KRM(Korean Research Memory) 연구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