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조선시대 산송(山訟)자료와 산도(山圖)를 통해 본 풍수 운용의 실제

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조선시대 산송 자료를 통해 묘지 이용권·소유권 분쟁과 풍수 운용을 살폈다.
초록
산송은 묘지를 중심으로 한 제반 이용권과 소유권에 결부되어 일어나는 쟁송이다. 산송이 연대기 자료(법전자료, 『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에 등장하는 시기는 17세기 중반 이후부터이다. 산송의 근본적인 원인은 분명히 분산(墳山)확보, 재산권 문제와 결부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산송을 문제상황이라 지목할 때는 무엇보다도 풍수설의 영향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 그리고 법규 차원에서 산송관련 법규들의 변천이 있다는 점이 산송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이다. 이와 같이 분산확보, 산림이용권, 그리고 풍수적 길지확보라는 세 가지 동인은 실제로 산송을 빈발하게 일으킨 직접적인 영향관계에 있었다. 조선 후기 산송은 주로 사대부들 사이에 일어났으며 그 중요한 원인으로 풍수설의 유포가 지목되었다. 그러나 조선조가 당면한 현안은 풍수 자체가 아니라 풍수로 인한 산송의 빈발과 산송의 수단이 되었던 상언과 격쟁의 처리문제이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 만들어진 부산물들이 현재 남아있는 각종 산송소지와 재판증거자료였던 산도(山圖)이다. 산송에 연루된 조선 민은 송사 때에 자신이 주장하는 땅이 오랫동안 집안의 묘역이었거나 풍수상 청룡 백호에 해당하는 산의 경계를 주장하려 했고 그 증거자료가 산도였다. 산도(山圖)는 산송(山訟)시 필요했던 일종의 재판증거자료였던 것이다.
이 같은 산도는 씨족 고문서에도 빈번히 등장할 뿐만 아니라, 풍수적 길지를 표현하기 위한 기행도 혹은 산수유람도의 형식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산송과 산도 자료를 수집․분석하고 비교․분류․범주화를 통해 해석함으로써, 조선 시대 풍수가 실제 민에게 어떠한 경험의 내용으로 자리잡고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본 저술의 목적이자 목표이다.

발행 정보

2008. NRF KRM(Korean Research Memory) 연구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