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식민권력이 조사한 조선의 소작 관습과 그 지식·정책적 역할을 살폈다.
초록
일본은 한일 강제 병합 이전부터 효율적인 식민통치를 위한 각종 법률 제정 및 시정 활용을 위해 조선의 각 분야에 걸친 관습 조사를 실시했다. 이 글에서 살펴 볼 ‘소작’ 관습 조사는 조선의 근간 산업이 농업이었고, 전체 조선 인구의 80% 이상이 농민이었던 당시, 가장 중점을 두고 이루어졌던 조사분야였다. 식민권력의 조선관습조사는 실제로 1930년대 식민지 농정의 새로운 정책 입안에 기초자료를 제공했고, 사회현상에 대해 식민권력이 피지배자인 조선농민 및 조선사회에 대해 통치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의도대로 설명할 수 있는 데이터의 역할을 했다고 할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조선총독부촉탁 젠쇼 에이스케(善生永助)의 『조선의 소작관습(朝鮮の小作慣習)』(1929)은 소위 ‘근대지식’ 권력으로서 그 역할을 확실하게 수행했다고 할 것이다. 한편 ‘소작’이란 용어 자체는 우리의 고유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근대 일본에서 만들어진 신생어로 실제 다양성, 특이성, 포괄성, 예외성 등의 성격을 가진 우리 고유의 수많은 임대차에 해당되는 용어들이 단순하게 ‘소작’이란 명쾌하고도 분명한, 그리고 효율적인 근대 개념으로 통일되었던 것이다. 즉, 전통적 사회의 토지에 대한 중층적인 권리는 간단하게 ‘지주-소작’이란 소유권을 우선적이고 절대적으로 하는 관계로 법제화되었던 것이다.
젠쇼는 『조선의 소작관습』에서 조선 농촌의 농민층 계층분화의 심각성, 농가경제의 빈곤함 등 구조적인 식민지 농촌의 병폐 및 경제난이 ‘악덕 지주’의 폐해에 그 원인이 있음을 여러 가지 조사 수치와 통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젠쇼는 또 하나의 폐해로 ‘사음(舍音)’의 존재를 부각시켰다. 결국 식민지 농촌의 빈곤과 파행이 식민권력이 아닌 개별 지주와 사음에게 있다는 식의 근대적 통계수치의 제공은 식민권력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이러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상태를 해결해 줄 지극히 공정하고 객관적인 공권력이라는 의도를 저변에 깔고 있다. 이제 식민권력은 ‘근대 학술’, ‘근대 지식’을 내세워 식민지 현상을 해석하고, 식민지에 적용하는 중재자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이었다.
발행 정보
2018.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한국문화연구(The Korean Cultural Studies)』 Vol.34No.-[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