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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高麗末) 사전(私田)담론의 정치적 구성: 토지를 둘러싼 정치적·도덕적 언어에 대한 개념사적 분석

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고려말 사전 담론과 토지제도 개혁의 정치적·도덕적 의미를 분석한다.
초록
고려말 사전담론과 그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 본 연구는 우선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공·사의 개념규정을 살펴볼 것이다. 주지하듯 공과 사의 용례는 대단히 방대하다. 그것이 사용된 시대에 따라, 한국·일본·중국에서 상이하게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사의 의미는 그야 말로 원대한 연구과제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 이 문제를 천착할 여유가 없다. 다만 전근대 동아시아에서의 공·사의 개념을 다룬 저서들이 번역되어 공·사 개념을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공·사개념에 대한 검토를 바탕으로 하여 고려시대 공전과 사전의 의미를 검토한 후, 고려말 사전이 어떤 의미로 활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한편 고려말 사전개혁은 새로운 사상인 신유학을 수용한 이들이 고려의 고질적 병폐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되었다. 고려 후기 들어 국가재정의 감소에 따른 폐단은 심각했다. 국가재정의 결핍은 사패전, 사원전, 권력기구에 하사한 토지, 권세가들의 겸병과 은닉에 의해 야기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국가재정의 축소는 관료들에게 녹봉과 과전을 제대로 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이 토지겸병은 토지를 둘러싼 소송의 폭증을 야기했고 소송을 해결해야할 관원들은 자신의 고유 업무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로 이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문제는 권세가들이 소송에 직접 관여하였고 관료들 역시 소송과정에서 많은 폐단을 야기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토지겸병과 관료의 비리는 동전의 양면처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이런 이유로 당시 사대부들은 고려에서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로 인식했다. 이런 문제의식은 고려말의 名儒였던 이제현에서 시작되어 이곡을 이어 이색에게 이어졌고 정도전과 조준 등은 이 문제를 사전개혁으로 해결하려 했다. 따라서 사전개혁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고려말 전개된 전제개혁론을 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화도 회군 이후 사전혁파의 과정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부분적으로 언급되어 오던 전제개혁론은 위화도 회군이후 사전혁파론으로 폭발한다. 趙浚, 趙仁沃, 黃順常, 李行의 상소로 시작된 사전혁파의 논의는 과전법이 수립될 때까지 고려 조정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趙浚, 趙仁沃, 黃順常, 李行의 상소는 모두 고려말의 토지문제를 사전의 문제와 동일시하여 사전의 혁파를 통해 원래의 고려의 토지제도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선행연구에 의하면 이들이 주장한 사전혁파는 조선개국의 서막으로 알려져 왔다. 一田一主론에 입각한 ‘사전개선론’과 사전의 혁파를 주장한 ‘사전개혁론’의 대결은 고려왕조를 유지하려는 이색과 새 왕조를 수립하려는 조준·정도전의 대립이었고 결국 후자가 승리하여 조선이 건국되었다는 것이다.
새 왕조의 토지제도인 과전법은 문란해진 수조권 분급제의 재정립이었고 수조권과 소유권의 중층적 토지구조의 말기적 형태였다. 사전혁파의 의미는 이렇게 해석되어 왔다. 급진과 온건 혹은 진보와 보수의 시각에서 조선의 건국을 해석하려는 시도 속에 은폐된 혹은 간과된 무엇은 없을까? 고려말 정치적 상황, 사전개혁을 주장한 이들의 성향, 사전혁파가 논의되는 과정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당시 정국은 다른 각도에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사전혁파상소는 우왕 14년 7월 창왕 즉위년 7월 조준, 이행, 황순상, 조인옥에 의해 주장되었고 즉위년 8월 창왕이 사전의 조 가운데 반만을 징수하라는 교서를 내리자 여기에 반대하여 許應이 9월 다시 상소를 올려 이들의 주장이 대다수 관철되었다. 따라서 창왕 즉위년 사전혁파는 조신들 사이에 별다른 논란이 없이 추진되었고 곧 급전도감이 설치되었다. 논란은 창왕 원년 이색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 온 직후 도당에서 시작되었고 논점은 경기를 제외한 外方에 사전을 둘지 여부였다. 여기서 이색·변안렬·우현보를 한편으로 하고 조준·이성계·정도전을 다른 한편으로 한 격렬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당시 사전혁파가 논의되는 과정을 보다 면밀히 검토해 보면 논점이 무엇인지 분명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이행과 같은 인물은 사전혁파를 주장하였으나 두문동에 은거하였으므로 사전혁파론과 조선건국을 열결시켜 고찰하는 것 역시 다른 각도에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정도전과 조준의 차이 역시 선행연구에서는 간과되었으므로 같은 조선건국 세력이라하더라도 정도전과 조준의 차이가 무엇이었는지도 검토할 것이다.

발행 정보

2011. NRF KRM(Korean Research Memory) 연구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