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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발전주의 국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태동과 전개 : 1960~1970년대 지방 공업단지와 수도권 분산 정책을 중심으로

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1960~1970년대 지방 공업단지와 수도권 분산 정책의 전개를 분석했다.
초록
본 연구는 1960~1970년대 한국에서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태동하고 전개된 과정을 규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시기의 한국은 시장 경제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주도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끌고자 했다는 점에서 발전국가라고 지칭되기도 하는데, 본 연구는 이러한 설명을 수용하면서도 전통적인 발전국가론이 전제해 왔던 베버주의적 국가론의 요소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대신, 국가 권력의 행사 과정을 여러 이해관계자들과 그들 전략 간의 경합으로 이해하는 전략관계론적 관점에 의거하여 발전주의 시기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분석한다. 이에 따르자면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합리성과 당위성에 의거하여 추진된다기보다는 정치·사회적 과정을 통해 (재)구성되는 것에 가깝다. 우선,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태동 과정을 살펴보고, 그 후에는 낙후지역을 육성하는 유형에 해당하는 지방 공업단지 정책과 과밀지역을 억제하는 유형에 해당하는 수도권 분산 정책을 분석 대상으로 설정하여 각 사례의 구체적인 전개 과정을 탐구한다. 본 연구가 규명하려는 연구 질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장 지향적인 한국의 발전국가에서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태동할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둘째,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전개 과정에서는 어떤 이해관계자 및 갈등·쟁점이 있었으며, 이중 정책의 추진과 후퇴의 요인은 무엇이었는가?
셋째,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형성과 전개 과정에 대한 전략관계론적 고찰이 한국 발전주의 공간계획에 대한 해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발전주의 시기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분석함에 있어서 전략관계론적 접근법은 다음과 같은 관점들을 제시한다. 첫째, 국가 권력이 여러 사회세력과 이들의 전략의 경합과 각축에 의해 행사되며, 그 과정에서 특정 세력과 전략에 더 유리한 조건, 이른바 전략적 선택성이 형성된다. 심지어 국가라는 체계조차도 단일한 행위자가 아니어서 국가 기구 내 여러 행위자들도 이 역학관계에 관여된다. 둘째, 자본주의 국가에는 구조적인 모순과 전략적인 딜레마가 본질적으로 존재하므로, 전략적 선택성이 한쪽 방향으로만 발현되어 다른 한쪽의 딜레마가 무시된다면 문제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어떤 정책적 의제와 공동선은 당위성과 합리성의 차원이 아니라, 이 문제적 상황을 해소·회피하려는 정치·사회적 과정에서 구성될 수 있으며, 그 의미 또한 특정 주체에 편향적으로 구성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은 국가를 사회와 분리된 합리적이고 단일한 행위자로 보는 베버주의 발전국가론과 상치된다. 셋째, 전략관계적 국가론을 공간이론화 한 국가공간론의 사례와 같이, 전략적 선택성과 관련 쟁점들은 영역·스케일 등 공간적 차원에서도 발현될 수 있으며, 특히 공간계획·정책에 대한 분석에서 유용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전략관계론에 의거한 분석을 위해 각 사례의 전개 과정을 최대한 미시적으로 기록 및 분석하고, 과거 선행연구에 비해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형성 시기와 원인을 더 다각적으로 확대하여 검토한다. 다만, 실제 경험적 분석에서는 사료 등의 한계로 전략적(혹은 공간적) 선택성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므로, 비교적 관찰하기 용이한 국가 기구 내 세력들의 입장·전략과 그들이 겪는 딜레마적 상황, 즉, 전략적(혹은 공간적) 딜레마에 대한 분석을 통해 사회 세력들의 이해관계를 간접적으로 추론한다. 구체적인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태동하게 된 배경에는 경부축 중심의 지역불균등 현상과 지역계획 및 국토계획의 담론적·제도적 도입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지역불균등이 경부축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은 조선을 둘러싼 지정학적 정세에서 우위를 획득하고 조선을 식민화시키는 데 성공한 일본의 공간적 전략이 선택된 결과였다. 해방 이후,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발전주의 축적 전략은 경부축 상의 거점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지역불균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에 따라, 대도시의 과도한 혼잡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등장했고, 1960년대 후반에 안보적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수도권 분산 정책의 계기로 작용했다.
호남과 같이, 발전주의 축적 전략에서 배제된 지역에서는 발전에 대한 욕망과 정책적 소외와 차별에 따른 불만이 제기되었다. 이 같은 지역주의가 직선제 선거를 통해 표출되면서, 집권 세력은 발전주의 축적 전략에 중점을 두면서도 낙후지역 발전에 관한 정책 의제를 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국토·지역계획 담론은 식민지 시기를 통해 경험한 바 있었지만, 산업기반 조성 및 고용 증대를 위해 추진되었던 정부의 국토건설사업과 지역계획을 주요 정책 수단으로 장려·권유했던 국제 원조체제가 국토·지역계획의 수용에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신생 국토·도시계획 전문가 집단도 집단의 존속과 업역의 확립을 위해 정부의 초기 지역계획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지역계획의 수용에 기여했다. 국내에서 지역계획이 국토계획 체계 내에 위치하게 된 것은 한국에 선행했던 일본 국토계획에 대한 제도적 모방이 영향을 미쳤으며, 지역계획의 단위가 전 국토를 상호배제적이면서 전체 포괄적인 영역들로 구획하는 광역권의 성격을 갖게 된 것은 한국의 경제개발계획과 국토개발계획에 지역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고자 했던 미국-UNDP 원조체제의 영향이 작용했다. 일본의 국토계획은 초기 수립 당시부터 국토의 균형발전을 목표로 추구해 왔으며, 미국과 UNDP도 1960년대 후반 경제·국토개발계획의 수립을 지원하면서 모두 지역 간 균형을 주요 목표로 제시했다.
이상과 같은 배경들 속에서 한국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형성되었다. 1960년대 전반부터 지역불균등을 통한 거점개발 방식을 특징으로 하는 발전주의 공간계획이 공식화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지역계획을 매개로 권역 간 균형이 부수적인 목표로 제시되었다. 그 이후 196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지역불균등으로 인한 대도시 집중이 경제적 효율성을 저해한다는 인식과 낙후 지역의 침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이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시행해야 할 당위성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부터 추진된 지방 공업단지 정책에 비해서 서울·수도권을 억제하는 정책은 시행되지 않다가, 1960년대 후반에 안보적 위기가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당위성에 추가되면서 수도권 분산 정책도 본격적으로 실행되었다. 1971년에 수립된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은 1960년대를 거치면서 구성된 지역균형발전의 논리적 준거들이 종합된 계획이었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부터 지역불균등으로 인해 확대된 지역 간 격차와 사회적 균열이 선거의 결과로 나타나자, 이는 정권의 정치적 위기감으로 이어졌고 정권은 유신체제의 수립을 통해서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함과 함께,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조항을 헌법에 삽입하여 지역균형발전 담론에 헤게모니적 위상을 부여했다.
또 한편으로, 유신체제는 수출 극대화를 체제 정당성의 확보 수단으로 간주하면서 헌법적 가치로 표방한 지역균형발전 담론을 총동원적 생산 담론으로 활용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낙후지역 육성 정책에 해당하는 지방 공업단지 정책은 규제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수반하지 않는 만큼 이른 시기인 1960년대 중반부터 추진되었지만, 발전주의적 축적 전략과의 경쟁에서는 열위에 있어서 정책 실행의 변동성이 컸다. 그러나, 직선제하에서 정치 엘리트들은 선거공학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이를 활용하는 지역행위자들의 지역주의적 행위가 지방 공업단지의 동력이 되었다. 한편, 지방 공업단지의 공급과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한 특구로서 지방공업개발장려지구의 도입이 추진되었는데, 중앙부처 및 야당의 입장과 전략들이 경합하면서 장려지구가 실행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지나친 분산에 따른 비효율을 경계한 경제기획원·재무부는 장려지구의 혜택이 작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행정부를 견제하면서 저개발지역의 지지를 획득하고자 했던 야당과 생산 확대 및 기업 간 형평성을 중시한 상공부는 장려지구의 혜택 강화를 주장했다. 정책의 취지와 무관하게, 정권의 독재화에 반대하는 야당의 투쟁 과정에서 장려지구의 도입이 지연되기도 했다. 결국, 장려지구는 최초에 도입되었던 것보다 축소된 형태로 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실행되었다.
한편, 1970년대 전반기에 들어서 식량의 자급이 주요 의제로 부상하자, 농림부의 농지보전 정책과 상공부·건설부의 산업개발 정책 간 경합이 발생했다. 경합 결과, 농경지 잠식 정도가 큰 내륙 입지가 다수이며, 발전주의 축적 전략에 대한 기여도도 낮은 지방 공업단지 정책이 크게 위축되었고, 1975년에는 농지보전을 위한 전국적인 도시계획 재정비가 시행되면서 농경지가 상대적으로 많은 낙후지역의 용도지역상 공업지역이 크게 축소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상공부가 공업용지가 부족하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지방 공업단지의 공급은 다시 활성화되었다. 상공부는 지역 간 형평성보다는 총량적 자원 동원의 측면에서 지방 공업단지의 역할을 주목했으며, 이를 통해 공업입지 정책을 둘러싼 건설부와의 경쟁에서도 우위에 서고자 했다. 지방 공업단지의 재활성화 국면에서는 중앙정부의 재원 투자 비율이 높아지고 유신체제 성립으로 인한 선거의 대표성이 약화되면서, 이전과 같이 정당 간 경쟁을 매개로 하는 지역주의의 표출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광주권 생산도시화 운동의 사례와 같이, 1960년대에 형성된 지역주의적 영역동맹은 여전히 지속되었으며, 다만 체제 협조적인 기조하에 중앙과의 직접 관계 형성을 통해 지역 개발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밀지역을 억제하는 방침으로서 수도권 분산 정책은 1960년대 말 안보적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본격화되었는데, 규제를 수반하는 만큼 복잡한 갈등과 쟁점의 가능성을 내재했다. 정책의 초기 쟁점은 규제를 부과하는 과밀권역의 설정이었는데, 건설부는 일국적인 공간계획의 주체로서 서울시 전역을 과밀지역으로 간주했지만, 서울시는 서울의 강북지역만을 과밀지역으로 간주하여 강북 인구를 강남지역으로 분산시키는 방향성을 채택하면서 갈등이 발생했다. 그렇지만 양자의 분산 정책이 일관적으로만 작동한 것은 아니어서, 정치적 혹은 경제적인 이유로 규제지역에 오히려 투기적 도시개발 시책을 조장하는 모순을 보이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 대통령은 제1무임소장관실을 수도권 인구 분산 정책의 전담부처로 지정했고 그 결과로 「수도권 인구 재배치 (기본)계획」이 작성되었다. 동 계획은 규제권역으로서 수도권의 범위를 확정하고, 수도권으로부터 분산된 기능을 수용할 수 있는 5대 거점도시권을 전국의 각 권역에 설정했다. 그러나 분산 대상이 되는 서울 소재 시장 주체들은 입지를 고수하거나 이전 거리를 최소화하려는 자구적 전략을 구사하여 때로는 정부의 의도를 굴절시키거나, 그러면서도 오히려 정부의 지원을 획득하기도 했다.
계획의 실행을 담당한 정부 부처들도 소극성을 보이면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오히려 공업입지에 대한 권한이 건설부와 상공부로 이원화되면서 1980년대 수도권 분산 정책이 균열에 빠지는 요인이 되었다. 한편, 과밀지역으로부터 분산된 기능을 수용하기 위한 대체 지역의 개발계획도 추진되었다. 반월 신도시 사업은 과밀의 수평적 확산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분산의 용이성과 사업성의 이점을 고려하여 입지로 선정된 서울 근거리 위성도시의 사례였는데, 서울로부터의 분산이 계획대로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수용지로서의 기능을 일부 상실했다. 광역 아산만 개발계획은 건설부가 오랫동안 수도권 분산의 수용지이자 제철공업의 입지로 제시해 왔던 구상이었으나, 건설부 관료들의 토지 투기 사건이 밝혀지면서 백지화되었고, 관료 집단의 사익 추구적 행위가 관료적 합리성이라는 명분으로 포장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했다.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대통령의 구상과 의지에 따라 추진되기 시작하여, 이를 경제적 효율성의 명분으로 정당화한 상공부 계열 관료들에 의해 구체화 되었으나, 대대적인 국토 개편에 따른 금전적·사회적 비용의 발생이 예상되었고 정권이 종식되면서 전면 백지화되었다. 과밀지역의 규제뿐만 아니라 그 수용지를 개발·공급하는 시책에 이르기까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발전국가의 합리성은 환상에 가까웠던 것이다.
본 연구는 발전주의 시기 한국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형성 및 전개 과정을 미시적으로 추적하고 발굴하였다. 이 시기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은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발전주의 축적 전략보다 부차적인 지위에 있는 가운데, 복잡한 전략

발행 정보

2024.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내박사 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