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근세 초 아우크스부르크 귀족 가문의 농촌 영지 경영을 분석했다.
초록
본고는 오래전부터 역사가들의 관심테마였던 근세초, 독일 도시귀족들의 주변 농촌지역 영지경영이 반드시 상업자본의 비합리적 봉건성으로의 회귀가 아니었음을 아욱스부르크 도시귀족으로서 17세기에 시의 시민권을 포기하고 주변 영지에 정착하면서 제국기사로 신분전환한 Rehlinger 와 Imhof 가문의 영지경영 실태 분석을 통해서 밝혀보고자 했다. 무엇보다도 이들 가문이 농촌지역으로 자신들의 본거지를 이전한 이후에도 아욱스부르크 시에 있는 저택을 매각하지 않고 여기에 자신들의 관리의 일부를 거주케했다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왜냐하면, 그로인해 영지수입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곡물의 판매가격이 수시로 변동하는 것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수집하기가 훨씬 용의했고 그를 기초로해서 곡물투기를 수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고의 일차 사료는 이들 두 가문이 자신들의 관리로 하여금 작성토록한 다양한 행정장부들 (토지대장, 조세대장, 회계장부, 등기부 및 재판기록부)인 바, 이들 장부들의 비교분석을 통해서 근세초 행정관리 매체의 다양화 및 심층화가 소규모의 영지차원에서도 실현되었음을 입증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방법론적으로 기존의 사료비판학이 기본이 됨은 물론, 무엇보다도 최근의 새로운 연구동향중의 하나인 “매체(Medien)의 역사”의 이론적 논의를 기초로 하여 이들 행정장부들을 단순히 사료가 아닌 하나의 행정관리 매체(Verwaltungsmedien)로 파악함으로써 이들 매체가 누구의 발의에 의해서, 어떤 맥락가운데에 어떤 의도로 작성되었는가를 밝혀보고자 했다. 다른 한편으로, 본고는 위의 행정장부들의 분석을 통해 남부독일 농촌지역에서 통상 "Soeldner"라고 불리우던 소농 및 수공업자 집단이 제대로 된 농장을 소유하고 있던 대농집단과 비교해볼때, 사회경제적으로 항상 약자의 위치에 서있지 않았음을 입증하고자 했다. 다시말해서, 이들 소규모 토지보유농들은 농촌의 하층민과 동일시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서 다음의 세가지 사항이 언급될 수 있다. 첫째, 등기부 기록에 나타나는 농촌의 채무관계를 살펴볼때, 일부 부유한 수공업자들 - 특히 제분업자나 소목장이 -이 종종 대농들의 채권자로 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이들 Soeldner 중에서 일부, 특히 여관집 주인들은 상대적으로 대규모의 토지를 보유하고 있었고 대농들과 사돈관계를 맺고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들은 촌락의 중산계층이라 할만하다.
마지막으로, 대토지 보유농이 자신의 농장을 후계자에게 상속한 다음 소규모의 가옥을 구입하여 이곳에서 자신의 여생을 보내고 그럼으로써 Soeldner로 불리웠다는 사실은 이 용어가 반드시 하나의 사회계층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소규모 토지보유농을 의미하는 중립적인 표현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근대초 독일 농촌사회구조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보유한 토지의 多少에 따른 사회계층적인 분석틀 (대농 대 소농) 외에도 연령이나 친족관계같은 인적인 요소와 채무관계같은 물적인 요소가 함께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발행 정보
2002. Universitat Augsburg 해외박사 학위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