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조선 전기 진황처 개간에 따른 토지소유권의 성립과 운영을 살폈다.
초록
조선정부는 건국 직후부터 진황처 기경을 장려하기 위하여 두 가지 시혜적 조치를 취했다. 하나는 기경자에게 기경지의 소유권을 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기경지에 대해 일정 기간 면세 내지 감세 조치를 취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기경의 대상이 되는 토지는 ‘無主陳荒處’만이 아니라 소유주는 있으나 질병・이사・천재 혹은 횡탈 등의 여러 연유로 1~2년간 혹은 수년간 경작이 포기된 ‘有主陳荒處’도 있었다. 정부는 민인들로 하여금 陳荒處를 관에 신고하고 耕食하게 하려는 취지에서 立案法을 만들고, 기경을 원하는 민인들에게 입안을 발급해 주고자 했다. 그러나 실제로 진황처를 입안 받는 것은 민인들이 아니라 宮家・兩班家 등이었다. 더구나 이들 勢家들은 기경할 ‘무주진황처’를 직접 찾아내어 입안을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量案 上의 無主地’와 ‘量案 外 陳荒處’를 그 起耕・陳廢의 여부를 가리지 않고 입안 받거나, 심지어는 有主陳荒處와 이미 타인이 기경하고 있는 경지까지 ‘冒出立案’하여 횡탈함으로써 소유권분쟁을 일으키고 있었다. 첫째, 기경지, 즉 ‘有主民田’의 횡탈로 인한 소유권분쟁의 경우, 소유주를 가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양안 상에 ‘有主田’으로 등재되어 있거나, 田稅를 납부한 사실이 확인되면 原所有主에게 환급될 것이었다.
둘째, 本主의 여러 事故로 인하여 진황처가 되어 버린 ‘유주진황처’를 입안 받아 기경했을 때에 본주와 기경자 사이에 소유권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유주진황처’라도 진황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다면 ‘무주진황처’로 간주되기 십상이어서 실제로 양자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유주진황처’를 입안 받아 기경한 자와 본주 사이에 소유권분쟁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 『경국대전』에는 ‘5년 안에서는 본주에게 환급한다. 다만, 본주가 5년 안에 돌아왔을 때라도 현재 기경자가 토지가 없으면 경작지의 2/3만 본주에게 환급한다. 본주가 소장을 내고 5년 안에 立訟하지 않으면 심리하지 않는다’라는 조항을 두었다. 즉, ‘유주진황처’라도 5년 이상 기경했을 때에는 본주의 소유권은 기경자에게 이전될 수 있음을 정법화한 것이었다. 셋째, ‘무주진황처’ 기경과 관련된 소유권분쟁이 있었다. 이는 주로 ‘양안 외의 진황처’와 ‘양안 상의 무주지’를 입안 받은 궁가・양반가와 이미 기경하고 있는 민인들의 소유권분쟁으로서 조선전기에는 잦지 않았다. 그것은 조선전기에는 ‘무주진황처’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전대부터 ‘무주진황처’를 기경했을 경우, 기경자가 소유주가 된다는 것은 不問律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정부는 궁가・양반가 등이 입안만 받고 기경하지 않거나 민인들의 기경을 막는 것을 嚴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그들은 많은 率下奴婢와 率丁 등의 노동력과 財力을 투자해서 입안 받은 진황처를 기경하여 農庄을 만들고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조선전기에는 전국적이고 정기적인 양전이 실시되고 있었던 것도 그 배경이 되고 있었다. 실제로 이러한 소유권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은 양난 이후였다. 그들은 입안을 발급받고도 스스로 기경하지 않으면서 입안을 빙자하여 입안 없이 경식하고 있는 민인들의 기경지를 빼앗거나, 그 기경지를 이미 자기 소유지로 간주하고서 기경한 민인들로부터 지대를 수취하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기경지를...
발행 정보
2011. 한국외국어대학교(글로벌캠퍼스)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Journal of history and culture)』 Vol.40No.-[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