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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국사봉 주변마을의 송계(松契) 관행 -계룡시 향한리 송계를 중심으로- = The practice of Songgye in the Villages around Guksa-bong, Gyeryongsan -Focus on the Songgye of Hyanghan-ri, Gyeryong-shi-

연구 요약

연구 요지 (AI)
계룡산 주변 마을의 공동 산림 관리와 송계 관행의 형성을 살폈다.
초록
國師峰(574m)은 충남의 진산을 이루는 계룡산의 미맥이 남쪽으로 분기하여 논산시와 계룡시의 경계가 되는 산이다. 이곳은 조선 초기 이성계가 도읍을 옮기기 위해 무학대사, 정도전과 더불어 친히 이 산에 올라 신도의 지세를 살핀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후기 민간신앙의 상징물인 鐵馬와 국사당이 자리하여 지역민들에게 신성한 공간으로 각인된 영산이다. 그런가 하면 국사봉은 예부터 이 산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촌락민들에게 火木産地의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山田 개간 및 산지의 활용을 통해 경제생활의 중요한 터전이 되어주었다. 그리하여 국사봉을 끼고 있는 마을에서는 조선후기 이래 공동으로 산림을 禁養守護하여 왔으며, 이러한 入會慣行은 19세기에 이르러 松契가 조직되는 단초가 되었다. 송계는 조선후기 권세가들의 산림 私占으로 인해 야기된 公利地의 면적이 크게 축소되는 과정에서 파생된 산물이다. 19세기에 이르러 계룡산 국사봉 주변의 여러 마을에서 기존의 산림관행을 계승하여 송계가 조직된 것은 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것이었다. 본고는 지난 100여 년 동안 기록된 향한리 『송계장부』와 관련 고문서의 분석을 토대로 국사봉 일대의 산림관행에 주목, 송계의 조직과 운영 실태, 송계산의 소유권을 둘러싼 산송, 그리고 19세기 후반에서 오늘에 이르는 송계의 지속과 변화상을 계기적으로 추적하였다.
그 결과 설립 초기 향한리 송계의 역원은 상유사·공사원·조유사·전유사·각리 금송유사로 구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 역원은 상유사와 공사원을 중심으로 그 역할을 분담하여 송계의 운영과 국사봉의 금양수호를 도맡았다. 그런가 하면 송계산의 산림을 적극 활용하여 창출된 기금의 식리를 통해 매년 산신제와 거리제를 주재하고, 아울러 마을의 긴급사에 재정을 지원하는 등 사실상 대동계에 필적하는 중추적인 기능을 수행하여 왔다. 19세기의 산물인 향한리 송계가 그 존립기반을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지속되면서 21세기 지속가능한 산림문화의 모델로 부각되고 있는 이면에는 이러한 역동적인 모습이 전제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발행 정보

2009. 국립민속박물관 『민속학연구(Korean Journal of Folk Studies)』 Vol.0No.24[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