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발단
동강댐 건설의 본격적 추진은 1996년 2월 21일부터 1997년 12월 15일까지 영월댐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를 하면서임(건교부·수자원공사, 1997)
영월댐 건설 정책의 전개과정을 정책참여자의 변화과정을 중심으로 구분해보면, 먼저 댐건설이 논의되는 초기는 건교부에서 댐건설예정지를 고시하기 이전까지로서 댐건설정책의 주도권은 주로 정책부서에 있었음
유관기관인 환경부와의 이견이 발생했으며, 중앙부처간의 갈등 발생
한강대홍수와 2000년대 물부족 논리에 의하여 댐건설의 필요성이 우외에 있었고 건교부와 수공은 제도적 절차를 기준으로 무리 없이 정책 추진
언론에서도 주로 집단간 갈등문제로 보도(향후 정책이슈가 부각되면서 홍수조절과 환경파괴간의 양면성이 있는 문제로 취급)
1996년까지 지역수준에서의 문제로 인식되었으며 전국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이슈의 잠재기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한 보완요청이 있었고, 건교부에서는 이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해석하며 댐건설 강행
갈등전개과정
1996년 10월 이후 영월댐 건설 반대가 지역주민을 중심으로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
정선지역주민들은 영월댐 건설 이후 시가지의 수몰대책의 미흡함과 역류가능성을 근거로 정선군투쟁위원회를 구성하고, 영월댐반대주민설문조사를 하여 발표하는 등 댐건설을 반대하였고, 이것은 중앙일간지에 보도되기에 이름
건교부가 1997년 9월 22일에 댐건설예정지 고시를 하였고, 이것을 계기로 환경운동연합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되며 정책이슈가 전국적으로 사회적 쟁점화 되기 시작
언론 보도빈도가 증가하면서 1998년에 정책이슈가 점차 확산
환경운동연합은 다양한 쟁점을 제기하면서 동강 현지시위, 정책토론회, 건교부장관과 면담, 서명운동, 사진전 개최, 백지화촉구 성명발표 등을 비롯하여 1999년 1월가지 댐건설반대 및 백지화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
댐건설문제가 장기화되면서 수몰예정지역주민에 대한 각종 지원혜택이 중단되었고 그에 따라 지역주민의 생존권이 위협
비공식적으로 반대의 입장을 표명하기는 하였으나 공식적으로는 특별한 견해를 표명하지 않았던 수몰에상지의 지방자치단체 및 지방의회가 반대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기 시작
갈등심화과정
문제가 복잡해지자 범정부수준에서 문제해결을 위한 조정활동 착수
국무총리실 수질개선기획단에서 정책갈등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조정을 시도
정책갈등과 쟁점은 해결되지 않고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지고 정치쟁점화
대통령의 잦은 관심의 표명이 나타나게 되고, 국회의원과 정당, 국회의원연구단체의 관심도 높아짐
1999년 3월 3일 KBS애서 다큐멘터리 “동강”의 방영이후 동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매우 높아짐
당시 한 여론조사에서의 댐건설시 우선 고려해야할 점으로서 75.5%가 자연생태환경 및 댐의 안전성 문제를 드는 것처럼 주요 쟁점화
안전성 문제를 지적한 HARZA사의 지질보고서는 정치권의 관심을 더욱 높아지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치권의 문제해결시도가 구체적 입장표명형태로 나타나기 시작
갈등해결과정
정책추진방식에 변화를 통해 갈등해결 노력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해 나가기보다는 합동평가단 및 공동조사단과 같은 협의 및 조정기제를 통하여 정책을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