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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핵폐기물 처리장

사례 개요

“안면도에 핵폐기물 처리장을 세운다”는 초안은 1990년 9월 원자력위원회(위원장 : 부총리)를 통과해 곧바로 Ⅲ급 비밀로 분류된 채 안면도 현지에서 처분장소를 매입해 오다 1990년 11월 9일 열릴 예정이던 원자력위의 최종의결 준비과정에서 언론에 의해 11월 3일에 공개되었다. 그에 따라 안면도 지역주민들은 강력한 반발을 하였다.?
주민들이 행한 반발의 형태는, 그 강도의 면에서 단순한 시위, 과격한 반발양태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강도가 약한 단순한 시위는 11월 4일에서 7일까지 있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주민대표가 과기처 장관이 핵 처리장이 아니라고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신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또한 과기처 장관이 공식적으로 TV뉴스에서 주민이 반대하면 계획추진을 하지 않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서와 예비군 무기고에 방화를 했으며 반핵?반원자력 단체들이 조직적으로 이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결국 사태의 진정은 강제적이고 물리적인 힘인 경찰투입과 정치적으로 장관의 경질로 인해 이루어 졌다.
과기처장관은 기자간담회와 주민면담에서 원자력 제 2연구소가 핵폐기물처리장 이 아니라고 해명했다.(그러나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대한 과기처장관의 답변에는 분명히 처리장 계획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그러므로 그 당시 사실을 숨겼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주민반발이 심해지자 TV뉴스에서 주민이 원하지 않으면 사업추진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과기처장관의 갈등 회피적이고, 유화적인 태도와는 달리, 경찰은 병력을 투입하여 사태진압을 했다. 최종적으로 정치적인 해결책으로 대통령은 과기처장관과 충남도경국장을 해임했다.
주민과 정부기관 간의 갈등양상은, 약한 갈등의 형태인 단순한 시위와 사업계획에 대한 책임 있는 철폐요구에서 지서와 예비군 본부의 방화, 투석전 등의 강력한 반발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또한 그 해결이 잠정적인 해결일 뿐 어느 지역이든 이와 유사한 문제, 즉 원자력에 관한 사안에 대한 주민과 행정기관간의 갈등의 잠재성은 그대로 남겨둔 채 마무리 되었다.-

사례 연혁

  1. 1990.11.03
    과학기술처 안면도 일대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설계획 발표
  2. 1990.11.04
    주민들 "안면도 핵폐기장 설치 반대 추진위원회" 구성, 청년회의소 사무실에 상황실을 설치하고 조직적인 반대운동 전개.
  3. 1990.11.05
    1백여명의 주민 안면읍사무소에서 승언리 조개산까지 행진, 안면읍 이장단 28명 집단 사표 제출.
  4. 1990.11.06
    안면도내 초중고생 중 1천5백명 등교거부, 안면읍내 새마을 지도자 28명, 고남면 이장 14명 사표제출, 4천여명의 주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항의 집회, 행진하다가 500여명의 경찰과 투석전, 과기처장관(정근모)은 원자력 제 2연구소는 핵처리장이 아니라고 해명.
  5. 1990.11.07
    초중고교생들의 집단 등교거부, 상인들 철시, 주민 4천여명 터미널에서 시위, 과기처 장관과의 면담, 핵반대 단체들의 적극적 참여
  6. 1990.11.08
    주민 1만여 명이 시위를 벌였으며, 그 중 일부가 안면지서와 예비군 무기고에 방화, 경찰과 읍사무소를 놓고 공방전, 경찰은 전투경찰 10개중대 1천 1백여명을 투입, 정근모 과기처장관 오후 9시 뉴스에서 주민이 원하지 않을 경우 서해과학연구단지 계획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
  7. 1990.11.09
    과기처 장관 해임(정근모 장관에서 김진현 장관으로, 충남도경국장 직위 해제, 2천 5백여명의 경찰투입으로 주민시위는 진정됨, 충남도지사와 이장, 새마을 지도자, 부녀회장 등 주민 70여명과 간담회 가짐
  8. 1990.11.10
    안면도 사태의 진정, 초중고 대부분 정상수업, 주동자 7명 구속방침 등으로 사건은 일단 마무리.
  9. 1990.11.28
    과기처에 대한 국정감사 실시에 따른 과기처장관에 대한 국회질의.

원천 DB의 발생 연도(1995년)와 연혁의 날짜가 달라, 연혁 기준 연도를 표시했습니다.

AI 구조화 분석

Beta
갈등 원인
정부가 안면도에 핵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하려던 계획이 언론에 의해 비밀리에 추진되던 중 공개되면서, 안면도 지역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한 것이 갈등의 원인이다.
찬성측 쟁점
정부(과기처)는 해당 시설이 핵폐기물 처리장이 아닌 '원자력 제2연구소' 또는 '서해과학연구단지'라고 해명하며 계획을 추진하려 했다. 주민 반발이 심해지자 주민이 원하지 않으면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으나, 동시에 경찰 병력을 투입하여 시위를 진압했다.
반대측 쟁점
안면도 주민들은 '안면도 핵폐기장 설치 반대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직적인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과기처 장관의 해명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단순 시위, 집단 사표 제출, 등교 거부, 상인 철시 등 평화적인 방법부터 지서와 예비군 무기고 방화, 경찰과의 투석전 등 과격한 형태로 반발했다.
결과 및 현황
경찰 병력 투입으로 주민 시위는 진정되었고, 과기처 장관과 충남도경국장이 해임되었다. 정부는 주민이 원하지 않을 경우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며 사태를 일단락시켰다. 그러나 국정감사에서 과기처 장관이 처리장 계획이 있었음을 시인하며 정부의 은폐 사실이 드러났고, 원자력 관련 사안에 대한 주민과 행정기관 간의 갈등 잠재성은 여전히 남아있는 채로 마무리되었다.

AI 요약을 통해 생성된 구조화 데이터입니다. 원본 내용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