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발단
1994년 1월 5일 정부는 방사성폐기물관리사업의 촉진 및 시설주변지역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고 6월 1일부터 발효
1994년 10월 국무회의에서 방사성폐기물관리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 의결하고 방사성폐기물사업기획단을 발족
이 같은 방침에 기초하여 전국 592개의 후보지역을 선정한 후 이 중 전문가의 검토 등을 거쳐 10개 후보지역으로 압축
이들 10개 후보지역 중에서 지역주민의 정서, 지역개발 효과, 인구밀집지역으로부터의 거리, 지방의회의 의견을 고려하여 1994년 12월 22일 제2차 방사성폐기물관리사업추진위원회와 제236차 원자력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옹진군 굴업도를 최종후보지역으로 선정
1995년 2월 27일에는 방사성 폐기물관리시설지구로 지정고시
갈등전개과정
1994년 12월 15일 굴업도지역이 핵폐기장으로 선정되는 것이 확실시 된다는 보도가 나오자, 덕적도 주민들은 굴업도 핵폐기물처리장 건설반대투쟁위원회를 구성
인천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인천지역 환경단체들도 모임을 갖고 굴업도 핵폐기물처분장건설반대범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반대활동을 전개
덕적도 인근지역 주민들도 핵폐기물처리장 건설반대 서명운동을 전개
12월 23일부터 덕적도 주민들은 인천과 서울에서 본격적인 반대집회를 갖기 시작했는데, 1995년 3월 2일에는 덕적도 주민을 비롯한 경실련 등 시민단체 회원과 인천시민들이 정부 제1청사 후문에서 굴업도핵폐기장 지정고시 철회 촉구대회를 열고 가두행진 실시
굴업도 핵폐기물처리장 건설에 찬성하는 주민 120여명은 덕적면사무소에서 1995년 1워 19일 덕적면발전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에 국내외 핵폐기물 처분장 견학, 덕적도에 연구단지 유치, 지역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의 발표 요구
갈등해결과정
1995년 6.27 지방선거에서 핵폐기장 문제가 지역 최대의 현안으로 등장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에 당선된 최기선 시장이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굴업도의 안전성 재검토 약속을 이행하라는 시민단체의 요구수용
전문가 10명, 시의원 3명, 시민단체대표 5명, 덕적도 주민 3명, 시관계자 2명 등 총 23명으로 굴업도방사성폐기물처분장 공동조사단을 9월 중에 구성
조사단은 안전성 문제를 객관적으로 조사하고 조사결과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판명될 경우 인천시는 굴업도방사성폐기물관리시설 입지계획을 백지화하도록 정부에 건의할 것임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