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발단
1990년대 환경부는 소각시설과 광역쓰레기 매립지를 중심으로 쓰레기처리를 하고자 의도
매립지와 관련하여 정부는 노천투기식 비위생적인 매립지를 줄이고 지역주민의 매립지건설 반대로 인한 부지확보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지역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대규모 광역위생매립지의 건설을 계획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수도권지역에서는 김포군 검단면 일원 해안 간척지 627만평에 위생매립지를 조성하고자 전체 5공구의 건설계획을 진행
1989년 착공한 2공구의 건설사업이 1991년 11월에 준공하여 사용중
갈등전개과정
매립지 건설사업은 서울시가 수도권지역의 광역쓰레기 매립지의 설치를 건의한 1986년 3월부터 가시화
갈등은 당초 농경지로 사용하기 위해 조성했던 김포 간척지를 환경처가 매립지로 전환하면서 행정당국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에서 시작
완벽한 위생매립과 안전한 쓰레기운송 등으로 주민생활이나 환경에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환경처의 약속으로 주민들은 매립지 건설 수락
제1공구 공사가 진행?완료되어(1991년 11월 10일) 1992년 2월부터 수도권지역의 일반쓰레기가 반입되기 시작
동 기간 내 표면화되지는 않았지만 김포주민과 인근지역주민간의 내재된 갈등이 존재하고 있었고, 환경처와 조합간의 갈등이 내재?표출
갈등심화과정
갈등관계가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4월 매립지에 일반 산업폐기물의 반입이 결정되면서부터임
난지도와 김포매립지에 산업쓰레기 반입이 불가능해지자 경기도지역의 산업폐기물 배출업체들이 김포매립장의 산업쓰레기 반입허용을 요구하는 농성을 하고(1992년 2월 10일), 환경처가 김포매립지의 산업쓰레기 반입허용을 발표하자 이틀 후인 2월 13일에 지역주민들이 산업쓰레기 반입반대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집단시위를 시작
1992년 5월까지 산업쓰레기 반입반대 1천억원 주민복지기금 조성요구 쓰레기반입 전면중단 등의 주민집단반대가 전개, 그 과정에서 공권력과의 마찰 발생
환경처는 매립지가 절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사실을 누누히 강조하였지만 침출수의 누출과 같은 주민들이 우려했던 문제가 현실로 나타나자 정부에 대한 불신이 증가
갈등해결과정
1992년 5월 15일 지역주민들이 산업쓰레기 반입반대 추진위원회를 수도권매립지 대책위원회로 바꾸고 10명의 주민협상대표를 선출함으로써 집단투쟁에서 협상의 상황으로 변화
김포매립지 협상은 1992년 5월 19일에 시작하여 1994년 8월 30일까지 총 39차의 수도권매립지 실무협의회와 1992년 10월 24일에 구성되어 1994년 10월 27일까지 19회 개최된 백석 실무협의회를 통해 이루어짐
그 과정에서 민간연구소가 환경영향평가에 참여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등 조정을 통합 협상이 진행